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민음사, 2021
김혼비, 박태하 작가는 ‘K스러움’의 집합체를 찾아 지역축제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보았던 많은 장면들을 글 속에 담아내었는데, ‘황당(왜 저래?)과 납득(왜 저런지 알겠어!)이 엉켜 들고, 수긍(저럴 수밖에 없겠네.)과 반발(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과 포기(그러든지……)와 응원(이왕 이렇게 된 거!)이 버무려진(P8)’ 12편의 여행기를 완성했다.
보통 여행기에는 글과 비슷한 분량의 사진이 수록되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그 흔한 경치 사진 한 장 없다. 처음에는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두 작가의 찰떡같은 설명으로 사진으로 보지 않아도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으며, 오히려 사진이 없어서 더욱 스펙타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사진 없이 오롯이 내 상상력만으로 그려진 지역 축제의 현장은 내가 예전에 보아왔던 그런 심심한 공간이 아니었다.
황당한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오게 되고, 내가 이 축제에 직접 갔다고 한들 이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유쾌해졌다. 그중 배꼽 잡고 웃으며 읽었던 두 부분을 발췌해 본다.
음성 청소년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대회가 시작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았다. 역시 랩과 품바는 잘 엮였다. 지나치게 잘 엮였다. “뭐래 등신 새꺄, 닥쳐 등신 새꺄.” 같은 랩들이 듀엣으로 울려 퍼지고, “미친년 나쁜 년 정신 나간 년” 따위를 훅이랍시고 치는 걸 듣고 있으려니 영혼에 라이트 훅, 레프트 훅이 듀엣으로 들어오며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낮에는 품바들이 욕하는 걸 듣고 밤에는 동네 중고딩들이 욕하는 걸 들으러 여기까지 온 것인가. 왜 굳이 쫓아다니며 정성껏 욕을 듣는 것인가.(P124, 에헤라 품바가 잘도 논다)
소지가 허공을 나는 시간은 길어야 10초 정도였다. 무대 반대편 끝에도 한 명 더 해서 두 청년은 소지가 날아오르는 족족 경건경박하게 쏙쏙 빨아들였고, 충분히 봤으니 더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는데도 소지가 떠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그쪽으로 눈이 갔다. 그때마다 박태하는 강릉판 고스트버스터즈를 상상했고, 김혼비에게는 ‘나의 바람이 10초 만에 쓰레기가 되었다.’라는 문장이 자꾸 떠오르며 이 문장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야말로 초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P156, 어느 천년에 그거 다 했어)
이 책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12곳의 축제 중 적어도 한 곳은 방문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그중에 나는 '경남 밀양 밀양아리랑대축제'를 꼭 방문해 보고 싶어졌다. 책에서 설명한 ‘미친 흥이 절로 나는 상태’에 기어이 다다르는 모습을 내 눈으로도 꼭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혼비, 박태하 작가 없이 나 혼자서도 과연 축제를 즐길 수 있을까? 그들이 보았던 것을 나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지역 축제를 바라보는 편견과 불편한 마음이 조금 옅어졌으니 예전보다는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