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쟈 Sep 25. 2022

양이 남긴 것들

영화 [애프터 양] 리뷰


개봉: 2022년

감독: 코고나다

출연: 저스틴H.민(양), 콜린 파렐(제이크), 조디 터너-스미스(카이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테크노 사피엔스인 ‘양’이 어느날 작동을 멈추자 그들의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린다. 제이크는 양을 다시 깨우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양의 기억장치에 녹화된 영상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은 춤과 함께 시작된다. “4인 가족 배틀”이라는 타이틀처럼 각 지역의 4인 가족들이 동일한 동작의 춤을 추며, 게임을 진행하여 각 라운드마다 탈락 가족이 발생하는 형식이다. 양의 가족들은 이 춤 배틀을 위해서 전용 의상으로 갈아입는데, 그들의 의상은 은회색 사이버틱한 디자인으로 우리가 어린 시절 미래사회를 떠올렸을 때 흔히 생각하던 모습이다. 옷의 질감은 매끄럽고 광택이 있어,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은 마치 로봇처럼 보인다. 그에 더해 정해진 순서, 즉 화면에서 나오는 명령어대로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그들의 모습은 입력된 코드에 따라 동작하는 로봇들을 떠올리게 한다. 로봇의 의상을 입고 로봇의 행동을 본뜬 춤을 추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은 외양으로는 누가 로봇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한다. 마치 영화 초반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양의 모습이 너무나 사람 같아서, 양이 작동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가 로봇임을 알아채기 힘들었던 것처럼. 





고장 난 양을 고치기 위해 분투하던 제이크는 우연히 양의 중심부에 있던 저장소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 관장의 도움을 받아 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던 양이 촬영한 영상들을 보게 된다. 양이 돌보던 제이크의 딸 미카와의 다정한 한때, 숲, 그림자, 그리고 낯선 소녀의 모습이 촬영되어 있다. 제이크가 보고 있는 영상은 양이 촬영한 것으로, 우리는 제이크의 시선으로 양의 시선을 지켜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상 속에 제이크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양의 영상과 제이크의 기억이 하나의 화면으로 합쳐지면서, 우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양이 촬영한 과거의 영상 위로 현재의 제이크의 목소리와 기억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양이 촬영한 영상으로만 보이던 것이, 제이크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우리에게 그것은 단순히 양의 기록이 아닌 제이크의 추억으로 재탄생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이 아닌 양이 촬영한 ‘영상’들을 양의 ‘기억’으로 볼 수 있을까?  원래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편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제각기 다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양의 저장소에 있는 영상들은 기억이라기보다는 기록에 가까울 수 있다.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양의 기록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알파 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던 첫 번째 가족들에 대한 영상에서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는 양에게서 어떤 정서를 느끼게 된다. 특히 에이다가 신나는 걸음으로 뛰어가다 뒤를 돌아보던 오솔길은, 에이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우리는 에이다가 없는 빈 오솔길을 지켜보는 양의 감정을 짐작하고 싶어 진다. 양의 영상들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람의 모습들’과 이와 대비되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과 이를 바라보는 양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상들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외로움, 안타까움 등의 정서는 양이 로봇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그가 사람처럼 보이도록 한다. 로봇인 양이 촬영한 영상을 마치 사람의 기억처럼 느끼게 만드는 지점이다. 





제이크는 전통방식의 잎차를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 초반 그가 운영하는 가게에 한 손님이 찾아와 ‘가루로 된 차’를 찾지만, 그는 가루로 된 차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제이크는 뜨거운 물만 준비되면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는 간편한 가루차는 제대로 된 차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후에 양의 영상 속에서 양이 제이크에게 어째서 차를 좋아하는지 이유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그가 공들여 찻잎을 고르고 전통방식으로 정성껏 우린 차를 맛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속 제이크 가족들의 아주 단촐한 식사 장면과 달리 차를 우리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자율주행 무인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시대에도 400년 전 중국에서 차를 우리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차를 우리는 과정은 단순히 차를 만드는 과정만으로는 볼 수 없게 한다.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시대에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차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차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포함된다. ‘전통 방식으로 차를 마시는 과정’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며,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과정 중 하나일 것 같다. 차를 마시고 맛을 논하는 제이크의 모습과 양이 차를 마신 뒤 양철통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로 대비되는 그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영화는 인간의 모습을 한 양을 마치 물건처럼 들쳐업고 이동하거나, 가슴이 열린 채로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양의 시선을 보여준다. 양은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는 로봇이면서도, 그의 기억들을 전시하는 것이 꺼림직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간에 가깝다. 로봇이지만 그가 돌보는 가족들에게 접목된 양의 모습은 “테크노” 보다는 “사피엔스”에 더 가깝게 보인다. 인간과 복제인간, 그리고 테크노 사피엔스 사이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보고 싶은 것은, 영화 속 에이다의 말처럼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인 것일까? 아니면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 사이에서도 이해와 사랑이 가능하다는, 모든 존재를 동등한 가치로 보고자 하는 연대 정신의 하나에 해당하는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심장에서 마음까지의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