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 있으면, 논문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Publish or Perish
유명한 말이죠.
맞습니다. 논문을 쓰지 않으면, 실제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연구를 같이 해야하는 임상 의학자의 세계에선 도태됩니다. 현실적으로는, 수련 전공의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인 "지도전문의"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공의를 뽑을 때 불리하고, 교수로서 임용되거나 재계약을 하기도 힘들죠. 학회에서도 자신의 연구가 없으면 발표를 할 수 없으니 존재감을 보이기 힘듭니다.
학회같은 곳에서 다른 나라의 연구자를 만나도 내 연구가 없으면 김도 빠지고 소통에 제한이 됩니다. 너 이런 연구 재밌더라?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런 얘길 못들으니 뻘쭘합니다.
어떤 임상 의학 연구자의 이력을 볼때 어느 기관 어느 병원에서 일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건 어쩌면 피상적인 모습인거고 그 분이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알면 내면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구는 어찌보면 내 정체성입니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연구는, 재미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한줄의 사실은, 무수한 연구자들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결과들이 검증되고 검증되서 정제된 순도높은 메시지입니다.
정형외과에는, 그리고 그중에서도 발과 발목관절에는 무수히 많은 방대한 주제가 있습니다.
발과 발목은 증례마다 참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봄에 열리는 발 발목 학회에는 그런 증례들이 발표되기 때문에 단 한번도! 졸지 않고 재미있게 듣습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한가지 주제만 파는 교수님들도 많으십니다.
대학병원을 옮긴 지 얼마 안됐을때, 시니어 교수님이 환영의 의미로 밥을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훅 들어오시며 “그래 넌 어떤 연구에 관심이 있어?” 라고 물으셨을 땐 약간 정곡을 찔렸었죠. 그래서 이전에 했던 연구들을 생각나는대로 이것저것 입에 주워담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고, 여러 연구를 다양하게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배우는 즐거움은 크고, 그 배울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더 즐겁습니다. 인생의 가장 고차원적인 즐거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