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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pr 26. 2022

연습은 괴롭고 결과는 달콤

괴롭지 않으면 연습하지 않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왼손 엄지손가락에 조그만 상처가 생겼다. 가운데도 아니고 손 끝도 아니고 정면에서 바라보니 손톱 가까이 대각선 위치니 어디 닿을 일도 없겠거니 생각했다. 3mm 정도로 크기는 작은데 상처가 조금 깊어 연고를 바르고 대일밴드를 하나 붙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냈다. 대수롭지 않다는 건 순전히 생각일 뿐이었다. 손가락의 생각은 달랐다. 손가락의 하루하루는 찌릿찌릿했다. 고작 3mm인데.



1. 운동화를 신을 때 뒤축에 손가락을 낄 수 없었다.

2. 종이컵을 반대 손으로 커피를 들고 있다.

3. 한 옥타브를 넘는 건반은 제대로 누를 수 없었다.

4. 움직일 때 흑건에 살짝 스친다. 찌릿했다.

5. 밴드를 붙이니 휴대폰 엄지손가락 지문인식을 쓸 수 없었다.

6. 서재에 꽂힌 책을 빼는데 가장 먼저 닿는 위치였다. 충격이었다.

7. 양말을 제대로 당길 수 없었다.

8. 우유 까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9. 아령을 들면 피가 쏠리니 통증이 따라오고, 그래서 운동도 잘 안된다.

10. 저게 언제 나을지 신경 쓰인다.  


3mm 상처에 생각하지도 못한 10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무려 40년 이상을 같이 한 몸인데도 나는 내 손가락의 기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니! 조그만 상처 하나에 건반이 제대로 눌리지 않으니 연습은 이내 3초 만에 멈춘다. 피아노는 이 작은 상처 하나에도 영향을 받는 참 까다로운 악기인 듯 보인다.


피아노를 다루기 위해 갖춰야 할 원칙들은 많지만 우스개 소리로 악보에 표기된 위치를 제 때 누르는 것 밖에 없다고 한다. 그건 진리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선율이 왜 아름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 과학적, 심리적 규명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지극히 미미하다.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소리의 균일함에서 온다고 생각한. 균일함이 서로 동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 음 소리의 높낮이가 모두 다른데 '균일함'이라는 단어가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각 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높낮이가 있고 여기에 손 끝 감각으로 좀 더 크고 작은 소리를 만들 수 있지만 전후 음과의 균형을 맞추면서 연결되는 그런 균일함을 가리킨다. 거기서 오는 편안함은 내가 음악을 들을 때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원초적인 감정을 끌어온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선율을 표현하는데 소리의 강약이 한 음 한 음 불규칙적이라면 그것만큼 음악을 듣는데 당황스럽고 불안한 경우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분명히 나눠지는 것이고 불협화음을 시도한 많은 현대음악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고르게 누르는 것. 연주의 원칙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인 듯하다.


참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까다롭게만 느껴지고 기술을 연마하는 게 힘들어도 일단 곡을 마스터하고 나면 깨어나는 자유를 느낀다. 눈과 뇌와 손가락에 집중된 모든 신경들을 자동 연주에 몸을 맡기면 정신적인 자유를 찾게 된다. 처음 연습을 시작할 때 그렇게 빠르게 느껴지던 프레이즈 속도에 익숙해지면서 연주에도 여유가 생긴다. 복싱 선수들이 처음에는 상대편의 손이 보이지 않아 매번 쥐어터지다가도 오랜 훈련을 하고 나면 주먹이 출발할 때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고 일반인들의 주먹질은 너무 느려서 절대 맞을 수가 없다는 고수의 여유러움 같은 것일 게다.


그러니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머리는 그 곡에 맞춰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선율에 맞춰 봄바람이 불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꽃이 피기도 한다. 손가락 번호를 바꿔가면서 더 나은 자리를 잡기도 하고 때론 컴퓨터 자판의 독수리 타법처럼 손가락으로 장난치듯 뛰어다녀보기도 한다. 나만의 해석을 넣어 좀 더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굴드의 허밍음이나 유자 왕의 높은 킬 힐와 화려한 드레스가 그런 자유의 표현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연습의 과정은 괴롭지만 결과는 달콤하다. 연습이 지겹든, 짜증 나든, 근육통을 불러오든 그 모든 괴로움만큼 완성의 즐거움과 만족감은 배가된다. 어렵지만 한 발 한 발 나가도록 해 주는 힘은 그 결과의 달콤한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중독일지도. 여기에 과정에서의 즐거움도 찾았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하루 종일 일에 치여서 몸과 마음이 어수선하고 답답하다면 마스터한 곡을 짧게라도 연주하면서 자유를 만끽해본다. 그런 곡이 몇 개 되지 않으니 아쉽고, 그래서 더 분발해보고 싶다.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더라도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부분을 찾았다면 그것 또한 만족이다. 이불 뒤집어쓰고 발가락 꼼지락거리면서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볼 때 불과 20분 정도 피아노 앞에 앉아 즐겼던 그 자유가 나를 편안하게 잠으로 이끈다.  


ps. 괴롭지 않으면 연습하지 않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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