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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ug 04. 2022

연습 어느 날

하루는 평범할 수 있다. 쌓이면 비범해진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 이어폰을 귀에 밀어 넣고 출근길을 나선다. 휴대폰에 저장된 뮤직 플레이 리스트에 레퍼토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 세상 피아노 클래식은 두 부류로 나뉜다. 내가 연습한 곡과 앞으로 연습할 곡. 내가 연습한 0.01%의 곡과 99.99%의 앞으로 연습할 곡. 아침 선곡은 앞으로 연주해보겠다고 생각한 버킷리스트들을 귀로 먼저 배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지금 연습하고 있는 곡을 시작으로 찜 해둔 곡을 연이어 들을 수 있도록 순서를 만들어 놓은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되겠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의 회사는 아니기에 지금 출근 시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렇게 아침 처음 들었던 음악은 가끔 일을 방해할 만큼 하루 종일 입가에 맴돌게 만들기도 한다. 아침에 처음 듣는 소리의 임팩트는 그렇게 강하다.


    첫 굴림은 현 수준이 어떤지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다. 초견 실력이 부족하기에 악보를 보면서 더듬더듬 건반을 짚어내고, 정확하게 눌러가고 있는지는 아침마다 들었던 화음과 선율을 기억해 내면서 맞춰간다. 그렇게 주욱 한 곡을 마치고 나면 무난한 부분, 조금만 해도 될 부분, 도전해야 할 부분으로 나눠진다. 무난한 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연습할 필요는 없다.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전체 곡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하면 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조금 끊기더라도 반복하되 한 번은 깔끔하게 넘어가도록 그 자리에서 반복 반복한다. 진짜 연습을 해야 하는 부분,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부분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부분을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주할 때는 설레는 순간이다. 그게 어떻게 해치워질지 그 과정을 보는 것도 마치 다른 사람을 엿보는 것 같은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물론 연습에는 정신적 피곤함도 함께하긴 하지만 말이다.


     전체를 연습하다 보면 잘 되는 부분을 아무리 무난하게 넘어가더라도 도전의 영역으로 점점 다가가면 집중력조금씩 떨어진다. 그 고비를 부드럽게 헤쳐나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디를 표기해 놓고 거기서부터 반복한다. 생각도 곁들여 반복 반복이다. 화가 날 때도 있지만 화풀이 대상이 있을 수는 없다. 화는 나는 건 자연스럽지만 어딘가에 화풀이를 하면 에게 지는 거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손가락 하나하나 힘 있고 정확히 짚어가면서 다시 시작한다. 50% 속도가 55%, 60% 조금씩 올려보고 다시 낮춰보기도 한다. 그런 반복이다. 피아노 연습법에서 속도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낮은 속도에서 정확하게 음을 집고 천천히 속도를 올리되 낮은 속도는 최소 50% 에서 시작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나치게 느린 20% 정도에서 시작하면 속도를 올려도 60~70%가 한계로 다가올 수 있다고 한다. 50%에서 시작해야 100% 원 템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50%에서도 틀리는 음이 많다면 아직 실력이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나에게 과분한 곡을 선택한 것이다. 아쉽지만 곡 선택부터 다시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항상 원 템포 이하의 속도로만 연습하는 것은 아니다. 70~80% 속도가 되면 틀리더라도 120~130%의 속도의 연주 연습도  도움이 된다. 빠른 곡을 다루다 보면 머리보다 손이 더 빨라야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 대부분의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공을 보고 야구배트를 휘두르면 이미 늦었다. 훈련된 눈과 몸이 기억하는 감, 한 스텝 한 스텝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감각은 이미 근육에 신호를 내려 보냈고 거기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건반 위의 손가락도 눈으로 음표를 보고 다시 건반을 보고 손가락 근육에 지령을 내리면 이미 늦었다. 진정한 연습은 암보를 한 이후부터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기억된 근육과 달리 감정은 기억되지 않는다. 순간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주에 감정을 이입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시간, 명령을 내리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바로 몸이 기억하는 순간이며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정상 속도보다 더 빠르게 연주해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듯하다. 그렇게 몸이 기억하는 순간을 감지한 소확행은 다시 나를 건반 앞에 앉게 만들어 준다.


    이제 자신감 붙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아직 느리지만 끼워 맞춰보니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제야 조금 완전한 한 곡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의 작품으로 들리기 시작할 때가 짜릿하다. 여전히 반복한다. 피아노 관련 카페에 수 없이 많이 올라오는 '잘 치는 방법'에 대한 공통된 답은 '반복'이다. 속도를 어떻게 올리나요? 연습하세요. 자꾸 같은 위치에서 미스터치가 나서 힘들어요. 연습하세요. 손이 작아서 안될 것 같아요. 연습하세요. 암보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연습하세요. 연습하세요. 그렇게 퍼즐을 모두 연결했다면 '완성'의 끝이 어디인지 나의 목표를 결정해야 할 시간도 필요하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연주시간은 제각기 다르고 쏟아부은 진중한 감정도 다르고, 거기서 끓어오르는 감동은 또 다르니 그게 음악이고 이제야 나만의 음악을 즐길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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