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Yu Aug 20. 2023

인류의 발명품 - 비대면

아빠, 난 코로나네이티브야!

"아빠. 난 코로나네이티브잖아"


"사랑스러운 우리 딸. 밖에도 안 나가고 혼자 뭐 그리 재미있게 놀고 있어? 답답하지 않니?"

(실제음성: 야이 징글징글한 것아. 방학이라고 하루 종일 방구석 처박혀서 곰탱이 인형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뭘 그리 낄낄거리고 있는 거냐? - 버럭 사운드가 삽입되지 않으니 그 느낌이 반도 살아나지 않네요... 아쉽습니다.)


코로나네이티브: 숨 쉬고 사는데 굳이 휴먼과의 대화를 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이 없는 세대. 대면보다 비대면이 익숙하고 때로는 비대면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낌. *국어사전에 없음. 오픈사전에도 없음. 이것은 큰 아이가 밥상머리에서 내린 정의(Definition) 임.


    비대면이 대면보다 편하고 휴먼과의 대화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15년 뒤 귀신도 저리 가라 할 몰골을 하고 있는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순간 떠올랐지만 우리 아이는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억누르면서도 내심 또 이걸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다행히 게임이나 (내가 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덕질 빠진 건 아니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숙제와 책상 옆에 쌓아 둔 20권 남짓한 책 속에 파묻혀 있기에 아직까지는 너그러이 믿고 용서할 뿐이다. 책으로 쌓은 탑이 딴짓을 가리기 위한 위장장막인지도 일단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책쌓기는 엄폐물이었나?


    세상이 점점 비대면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은 주변에서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코로나가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우리 일상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었기에 언제부터라고 집어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음식점 매장에 가서 키오스크(KIOSK)를 이용해서 주문한 지는 이미 꽤 되었고 최근에는 테이블마다 터치패드가 설치되어 자리에서 주문과 결재까지 한 방에 끝낸다. 심지어 서빙도 로봇이 해 주는 곳도 점점 더 익숙해진다. 여기에 식기반납까지 셀프로 하면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무인카페늘어나고 여기저기 눌러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무인카페에 사람은 많다...) 시작부터 끝까지 비대면인데 왜 팁(Tip)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이제 시작일 듯하고. 이 정도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비대면 일상생활이 아닐까?


    다름 아니라, 최근 의외의 곳에서 비대면세상이 되었다는 걸 발견하였다. 십 수년 전의 OPIC (영어말하기 평가) 책이다. 어쩌다가 반 강제적으로 학습 책을 뒤적거릴 일이 생겼다. (회사는 날 그렇게 가만두질 않는다) 오픽 시험 보셨던 분 기억하실까요? 특히, 후반부에 있는 Role Play 테스트는 전화로 주문하기, 갑작스러운 상황 설명하고 예약 취소하기, 만날 장소 찾아가는 길 설명하기 등등 이런 질의응답을 나누는 내용들이다. 하나하나의 질문들이 지금 다시 펼쳐보니 사람 사는 맛을 담고 있는 정겨운 장면들이 아니겠는가? 사실 그것도 비대면이긴 하니 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로 범위를 넓혀야겠다. 전화로 주문하기도 여전히 있지만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하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장소를 찾기 위해 건물, 도로명과 주변에 눈에 띄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샘플 답변 지문이 조금 피곤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건 어쩌면 나도 비대면과 묵언수행이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시대에 맞게 OPIC 문제가 달라졌다면 아마도 휴대폰으로 길 찾기를 설명하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다시 꺼내 읽는다. 재미있는 책은 아니지만 마음을 되짚어보기 위해 눈에 띄는 자리에 두고 가끔씩 펼쳐보는 책이다. 공자가 한 말을 읽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공자가 되는 건 아니다. 공자가 되려면 평생의 시간도 부족할 것이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인간 관계론도 다시 읽는다. 코로나네이티브 발언 이후 오래전에 출판된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이메일이나 휴대폰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방과 주방에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텔레비전조차도 없는 시대였으니까.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과 책상에 뜯어보지 못한 메일이 쌓여있다는 카네기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신 풍기는 서재가 인상깊다. 그리고 이내 곧 그걸 인상깊다고 느낀 나에게도 놀란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이 지금의 휴대폰을 부러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손 편지를 쓰고 아침 신문배달을 기다리는 시대에 살았기에 좀 더 서로에게 집중하고 좀 더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자기기에 파묻혀 살아가면서 그런 편지와 종이신문이 점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풍경이 되어가면서도 반대로 더 친근감과 애정을 느끼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디지털네이티브와 코로나네이티브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겪는 또 다른 낀세대는 아날로그의 어린 그 시절로 잠시라도 되돌아가보고 싶다. 꿈엔들 잊히리야...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검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