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도 않게 너무 서두르지도 않게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며 하나씩 지워갔다. 금융 조회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사실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어떤 금융 계약들이 있는지 궁금하긴 하면서도 직접 면전에서 여쭤보기 어렵다. 지난 과거, 어쩌다가 흘리는 아버지 말씀 속에서 듣긴 하였지만 모두 기억해 낼 수는 없었고, 그걸 정신 차리고 알아야겠다고 할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더 이상 의사표현을 할 기력이 없으셨으니...) 그렇게 그나마 몇 개 마음속 메모장에 기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궁금했던 사실 관계를 하나씩 처음 알아갔고 처음 지워갔다. 물론 마지막일 것이다. 마지막...
9월 치고는 조금 더운 날씨다. 이제 곧 추석이고 다행히 아직까지 춘하추동은 그 색을 잃지 않았지만 이 정도의 더위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는 미래가 걱정스럽다. 시청 거리를 거니면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여하튼 높디높아 보이는 하늘은 지금이 가을 맞다는 걸 알려주고 있긴 하다. 그렇게 또 한 계절 흘러가는 세상은 여전하고, 여전했고, 여전할 것이다. 그게 좋아 보였다.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험사, 금융사 즐비한 광화문과 시청 거리를 지나가며 언제 이 거리를 아이들과 한 번쯤 거닐고 싶었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기억'이 아니라 '같이 있었으면 하는 기억'. 몹쓸 기억이다. 지나간 시간 돌이켜봐야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효(孝)란 무엇이고 불효란 무엇인지. 세상 누구도 불효 앞에 자신 있을 사람이 없으니 그것도 태어난 원 죄의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보니 역시 불효에 더 가까이 있어 보인다. 그래 난 불효인가 보다.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다는 것도 알면서도 더 자주 챙겨보지 못한 것 때문에 불효했던 나를 질책할 뿐이다. 이 생경한 기분과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은 이제 시작이다. 차차 익숙해지겠다.
씁쓸함과 쓸쓸함과 허망함과 허탈함이 옷자락을 붙잡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시청 옆, 청계천 입구가 어떤 거리인가?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부끼는 모습이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곳이다. 그 거리를 거닐 때면 자유롭고 호기롭게 거리를 차지하신 몇몇 어르신들에게 많이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고 싶었지만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하는 발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불편함은 찰나이다. 이와 달리, 경의롭고 안타깝고 때로는 감사하고 번잡한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떠오르게 하는 그 상황은 그 거리를 지나쳐도 한 동안 마음켠에 남아있으니 그게 더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에게는 불편한 어르신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요 먼저 가신 누군가의 아들, 딸일 것이니.... 오늘만은 불편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어머니의 흔적도 발견된다. 돌아가신 지 15년이 흘렀지만 마치 2, 3년 전 같고, 아버지는 얼마 전 돌아가셨지만 마찬가지로 2, 3년 전 같은 기분이다. 얼마 전 정리했던 사진첩이 아른거린다. 두 분의 다정했던 모습, 고등학생 아버지의 모습, 호기롭게 산 정산 어디쯤 서 있는 군대시절 모습. 사진은 빛바랜 흑백에서 넘어와 어느덧 칼라로 바뀐다. 지금 내 가족과 비슷한 시기의 가족의 모습이 한참 나의 눈을 붙잡는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모습과 나의 학창 시절 모습 그리고 지금 학창 시절인 내 아이들의 모습. 중년의 아버지와 나의 모습들. 그런데젊은 아빠의 기억은 많지 않다. 내가 어렸으니 기억도 없는 게 맞을 거라 생각하니 지금 내 아이의 기억에도 나에 대한 기억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대의 모습들이 번갈아가며 아른거렸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가늠해 본 시간이었다. 보험금을 정리하는 수많은사람을 상대했을 경륜 있던 보험 설계사의 얘기가 생각난다. "이제 살 사람은 살아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