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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ug 26. 2023

아르페지오. 아오...

5센티에 기적을 바라본다

   세 번째 책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 편에 이어서 피아노에 대해 얘기가 더 있다. 다만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은 게 하나 있는데 바로 피아노 테크닉이다. 음악 전공을 한 것도 아니니 테크닉을 얘기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충분한 기량을 숙달하지 못했으니 어떤 얘기를 해도 그건 나의 상상일 뿐 허구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에서다. 반복되는 연습으로 뭔가 얻어갈 때마다 '깨달았다'라고 했다. 그렇게 깨달음을 남발해 왔는데 시간이 지나 또다시 같은 문제에 부딪히고서는 스스로 자문해 본다. "깨달았다며?" 결국 깨달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이다. 깨달았다는 말은 극도로 아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


   아르페지오. 주 패주고 싶은 녀석이다. 아르페지오가 아닌 다른 녀석들은 연습을 하다가 난관에 부딪혀도 끄응.... 살짝 괴롭긴하지만 이내 심호흡 한 번으로 털어버리고 다시 연습에 몰두를 하곤 했다. 그런데 아르페지오를 만나면 그렇지가 않다. 연습 시간이 어질수록 답답함이 섞인 짜증이 밀려 올라옴을 느낀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욕심이 앞서니까, 결국 내 마음이 급한 게 문제라고 더 큰 심호흡으로 마음을 토닥여 본다.  


    반복해서 연습해도 잘 되지 않는 건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읽힌. 손가락이 길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내 피아노가 스테인웨이가 아니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연습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아르페지오를 씹어 먹을 것 같은 여러 전문가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번스타인과 어느 교수님의 교수법 책도 들춰본다. 손목을 부드럽게, 힘을 빼고, 팔꿈치가 너무 가까이 있지 않도록, 팔꿈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손목을 돌리면서 vs. 손목을 돌리지 않고, 물 흐르듯 리듬을 타면서, 진행방향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중심 손가락을 확실히 하고 등등 알 듯 모를 듯 한 말들. 다 좋은 말들이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면 다시 망각의 동물 금붕어가 된다.(미안하다 금붕어) 모두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접근방법이 다르기에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는 흔한 결론에 이른다. 물론 그럴 줄 알았지만.

 

Chopin Nocturn Op. 9 No. 1


   내 손의 움직임을 마음의 눈을 이용해서 백분의 일초 고속촬영을 해본다.  지저분하다.  음 한 음 굴드처럼 명징하고 임윤찬 님처럼 깨끗하다면 제발 더할 나위 없겠다.


지저분하 = 음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 음의 강약이 일정하지 않다. 옆 건반을 살짝살짝 건들면서 소리는 뭉개진다. 짧은 도약에도 정확한 위치에 닿지 못한다. 약지 손가락에 힘이 없다. 검은건반을 깊이 누르지 못한다. 미끄러진다...



    심혈을 기울여 들여다보고 있다한들 답이 번쩍 솟아오를 리 없지. 일단 뭐라도 시도해 본다. 손가락을 좀 더 세우기도 하고, 속도를 낮춰 한 음 한 음 꼭꼭 짚어가며 몸으로 기억시켜보기도 한다. 손목이 쳐지면서 다른 건반을 것 드는 것 같을 땐 팔꿈치도 함께 들어본다.


    그러다가 의미 있는 시도를 찾은 것 같다. 손목이 쳐지는 자세 때문에 미스터치와 건반을 깊이 눌러주지 못하는 것같다 느꼈고 그래서 손목, 손등의 높이를 높여보려고 했는데 이를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는 게 생각보다 힘에 부쳤다. 흠... 그래서 손목을 높이는 노력보다 아예 의자의 높이를 올려보는 게 어떨까 싶어 조금 올려본다. 5 센티정도. 결과는? 당연히 건반과 손 끝이 닿는 위치에 변화가 생겼다. 손과 건반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더 생겨났고 덕분에 건반에서 좀 더 높게 움직이게 되니 옆 건반을 건드는 일도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아직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다. 좀 더 지켜보는 수밖에. 아르페지오 연구가 의자 높이를 다시 손보게 만들었다.


Beethoven Virus


아르페지오:  '하프를 타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아르페지아레(arpeggiare)에서 유래. 기타나 하프와 같은 현악기라면 아르페지오 연주가 좀 더 수월하려나? 피아노 뱁새는 황새인 하프를 따라가려다 그만 가랑이가 찢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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