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음 연주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왜? 왜? 왜? 나에게 물으니 좀 더 잘하고 싶으니까 그렇단다. 그렇지. 더 잘하고 싶으니까. 꾸밈음의 종류가 많지만 (앞꾸밈음, 뒤꾸밈음, 턴꾸밈음, 떤꾸밈음(트릴), 모르텐트 등등 바흐 꾸밈음은 또 어떻고...) 내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Scarlatti K.380잔결꾸밈음이다. 수 없이 많이 들어왔고 악보는 어렵지 않아서 더듬더듬 초견을 마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악상기호를 잘 지켰을까? 그런 건 궁금해 하지는 마시고 그냥 음표와 건반 맞추기라고만 해 주셨으면 합니다.
Scarlatti Sonata K.380 No.23 도입부
꾸밈음이 부담스러워진 건 오히려 곡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다. 무슨 말인고하니, 다른 테크닉에 집중하느라 관심을 돌릴 수 여지가 많다면 이 곡에서도 꾸밈음은 여느 곡과 마찬가지로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듯 맑고 영롱한(?) 정신으로 순수한 기운이 감도는 선율 사이에서 번뜩이는 꾸밈음은 좀 달랐다. 잘못 연주하면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완전 정신 바짝 짜릴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 신경쓰다보니 부담스러웠다. K.380 꾸밈음은시작부터 그랬다. 마치 공연장에서 솔로 연기를 하는 부분에서 모든 조명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그런 느낌.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연주되면 곡 전체에 대한 기대감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위 악보에 적힌 손가락 번호를 무시하고 평소 습관대로 손가락을 날렸고(23232) 이게 영 깨끗하지 못한 음을 만드는 주범이라는 것에 점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검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힘이 좋긴 하지만 빠른 속도로 연타할 때 확실하게 들어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동일한 소리를 만들어는 건 쉽지 않았다. 어물쩍 슬그머니 남의 집 벨 누르고 도망가려는 녀석처럼 자신 없는 소리가 계속 거슬린다. 이런 점이 나만 그런건지, 대부분의 연습생이 겪는 비슷한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자연스럽게 악보에 적힌 손가락 번호로 되돌아가본다. (23243) 손가락 위치가 바뀌는 것 만으로 분명 '파'음이 훨씬 깨끗해졌다. 다만, 평소 습관을 이겨내고 지금의 습관이 불편하게 되면서 더 이상 습관이 아니라고 하자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좋은 소리를 만드는 쉬운 방법, 노력을 줄여주는 방법 중 하나는 손가락 번호에도 있다. 괜히 손가락 번호가 적힌 게 아니다. 배우는 자세가 잠시 불손했음을 반성한다.
PS. 떨림의 회수도 아티스트마다 조금씩 다르다. 정답이 있는 건지, 아니면 연주자의 해석대로 길이를 늘여도 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