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가 보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담론이다. 과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철학, 심리학적인 호기심의 발현이 깊은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러 학문의 영역에서 유사한 진화의 과정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진리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음을 실증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진리인 줄로 알았던 건 단지 우리의 지식이 거기까지였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정말 몰랐던 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 직접적 영향이 크지 않기에 깊이 인식하고 있지 않거나 한계를 넘어 끝장을 보려는 노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뉴턴이 중력의 힘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은) 열광했고 힘의 비밀을 드디어 풀었다고 환호했을 것 같아 보인다. 그건 진리였다. 단지, 그 당시의 진리였을 뿐이다. 그 당시 역학 교과서의 마지막을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으려는 소수의 누군가에 의해 우리의 지식은 확장되어 왔다.
지식의 축적과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의 진리는 우주로 나아가고, 물체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빛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번쩍 드러내면서 더 이상 그동안 믿었던 지식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이 짠 하고 등장하면서 또 한번 세상은 뒤집힌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가설과 이론, 수학적 증명을 통해 어느샌가 뉴턴의 역학은 교과서 맨 뒤에서 점차 앞으로 당겨져왔다. 그 뒤에 넣어야 할 상대성이론과 다른 여러 법칙을 위한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리는 바뀌었다. 엄밀히 얘기하면 뉴턴 역학은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해야 하나 그건 그것대로 그대로 유지한 채 아인슈타인의 공식으로 '새 이름으로 저장'을 했다.그건 일상생활 수준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과도한 노동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일 뿐이다. 그리고 현대물리학은 상대성이론마저도 우주의 모든 지점에서의 물리적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미묘한 간극이 벌어졌고 그 미묘함은 뉴턴역학과 상대성이론의 간격보다 더 미세하기에 앞으로의 탐구 방향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 짐작된다. 물론 그 간극을 메꿔줄 새로운 법칙, 새로운 진리가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렇게 진리는 또 다른 진리로 덮어씌워질 것이다.
인류의 지식은 현재의 지식과 명제를 바탕으로 눈부시고 독창적인 통찰력을 발휘한 추론과 그 추론의 옳고 그름을 밝히면서 한 발자국 나아간다. 불완전한 지식은 언제든 새로운 가설이 그 불완전함의 틈을 파고들고 결국 그걸 설명해 냄으로서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확장시켜왔다. 불완전함을 발견하는 건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폭발적으로 성장한 기존의 지식의 충분한 흡수와 고도화된 지식이 필요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 정교하고 거대한 과학장비도 필요하다. 그건 새로운 진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 있어야 함을 직감한 도전적인 휴먼들의 노력이다. 이전의 발견을 이게 바로 진리라고 한 선언한 그 누군가는결코 잘못이 없다. 설명 가능한 한계가 거기까지였을 뿐이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지식의 수준이었으니까. 동시대의 공동체에서 합의된 진리에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하는 불완전한 틈이 있다면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는 것도 진리다.
아쉬운 점이 있다. 지식의 향연과 담론 속에서 인사이트가 눈에 띄지 않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하고 있는 얘기가 본 장의 주제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연관성을 찾으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가령 3천페이지 글을 5백페이지로 줄여놓을 때뭔가 더 설명이 필요한 단어들, 문장 간의 연결고리가 사라진 느낌 등도 따라가기 벅찬 부분이다. 어메나... 지칠 뻔했다. (혹,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의 개념을 창조해 내었고 과학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깨면서 발전한다는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패러다임은 바뀐다는 전제도 깔고 있다. 도이치가 말하는 진리의 정의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고 썰을 풀기 시작하였더라면 이런 아쉬움은 덜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도이치의 많은 노력들은 결국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축적된 새로운 증거자료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비쳤다. 독창적이고 흥미로웠지만 쿤의 인사이트를 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은자꾸 과학혁명의 구조만 불러오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쿤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리학자라는 타이틀은 조금 잘못된 마케팅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책에서는 분명 '물리학자가 보는 세상'이라 하였고 그 세상의 영역이 '물리학, 과학'이라고 한정지은 적은 없으니 과학적 깊은 탐구를 기대했던 내가 잘못 생각했다면 할 말은 없다. 철학까지는 괜찮았다. 과학과 철학의 대화는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사회학과 법률 분야에서는 생경함을 느낀다.
표지그림: 참으로 알고 싶은 명제로 가는 길.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 특별강연회에서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