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Yu Oct 07. 2023

다정한 서술자

가까이 있으나 잡지 못하는 눈가림 숨바꼭질

    미처 부주의했던 부분이라면 노벨문학상이라는 후광에 이끌렸을 뿐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녀의 책을 읽고 읽었어야 할 책이었다. 하지만 난 무지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뿐이고. 하지만 우리가 여행 에세이 책을 다 읽었다고  여행 안가는거 아니죠? 더 가보고 싶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녀가 말하는 다정한 서술자에 이끌려 지금 나는 그녀의 책들을 찾아보고 있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의 첫 에세이집입니다. 여섯 편의 에세이와 여섯 편의 강연록이 담겨 있는데, 강연의 내용은 토카르추크가 집필하였던 책들에 대해 파고들고 있습니다. [낮의 집, 밤의 집, 1998], [방랑자들, 2007], [야쿱의 서, 2014] 등. 그렇기 때문에 그 책을 읽은 독자라면 훨씬 더 흥미롭고 흡입력 있게 마음 깊이 와닿지 않았을까 하네요. 하지만 그녀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음에도 간결하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하는 그의 통찰력에 자꾸 밑줄을 치게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연에 소개된 책들은 나의 필독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364p,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메커니즘입니다.


   때로는 본인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내린 작품해설을 읽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창작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정말 힘들었어요에서 끝나지 않고 어떤 어려움,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 편의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 숨어 있던 '서술자'를 찾아내고 불러내어 끌어올리는 것, 치밀한 조사를 통해 지식을 쌓아야 하는 것, 많은 독서, 독창적 영감, 그리고 그를 융합해 내는 노력, 노력 그리고 노력. 무엇을 쓸 것이며, 그것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느끼도록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렇게 토해낸 책이 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그렇게 하기 위한 섬세한 장치들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결말을 어떻게 맺을 것이며 과연 사회적, 윤리적으로 보편타당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등등. 때로는 어떤 결말을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해 지인들과 토론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녀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자료수집시간부터 원초적인 사유부터 치밀한 의도까지 일련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그녀의 서재에 들어와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전달된다. 본인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뼈아픈 경험들이다. 그녀는 결코 창조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있었던 그 존재를 찾아냈고 데리고 온 산파였다고 강조한다.  이쯤되니 차라리 창조하는 게 더 쉬워 보이는 것 같다.


   193p, 글쓰기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 젊은 작가들은 종종 목소리를 내는 당사자를 자기 자신, 그러니까 먹고, 자고, 여행하고, 사랑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동일 인물이라고 여깁니다. 그것도 너무도 당연하게 밀이죠.... 작가는 이야기를 창조하는데 꼭 필요한 어떤 특별한 과정 혹은 흐름에 반드시 휩쓸려야만 하는데, 나는 그것을 목소리라고 부릅니다. ~~~ 334p, 결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젊은 여인, 내 어머니는 그렇게 한때 사람들이 '영혼'이라 부르던 뭔가를 내 안에 심어 주었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를 내게 선물했습니다. ~~~ p364, 다정함이란 가장 겸손한 사랑의 유형입니다. 성서나 복음서에도 언급되지 않고, 이것을 걸로 맹세하는 사람도 없으며, 인용하는 사람도 딱히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랑입니다. 다정함은 우리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면밀하고 주의 깊게 바라볼 때 구현됩니다. 다정함은 자발적이며 사심이 없습니다. 다정함이란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본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토카르추크의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면 그의 글에 충분히 빠져들어 있는 사람들이기에 강연은 저자와 작품의 인물과 메시지에 대한 대화로 진행된다. 음악회에서 음악에 흠뻑 빠져드는 건 그날 레퍼토리 곡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많이 들었느냐에 달려 있듯이, 작품에 대해 얼마나 흡수하고 있는지에 따라 토카르추크의 강연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의미를 찾는 끊임없는 대화는 그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임은 틀림없다. 세대를 넘어 모두가 아우를 수 있는 메시지를 찾으려는 노력들도 인상적이다. 과거에 머무르며 오늘 세대들을 질책하거나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시대의 변화와 눈높이에 맞춰 시대를 다시 읽고 실존의 아름다움과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냥 숨만 쉬어도 멋져 보인다.

71p 통찰력이란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즉각적이고 총체적이며 자발적인 깨달음이다. 이것은 다단계에 걸쳐,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는 인식의 특별한 종류다. 무엇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 모든 질문이 그 안에 전부 담겨 있다.

282p, 제아무리 심오한 신화적 토대에 기반한 의인화라 할지라도 또 하나의 요소가 추가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설득력 있는 인물을 창조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것을 '다정함'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아... 이제 알겠다. 신은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당신을 고용했다. 단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