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말 어렵게 하시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알았고 좀 놀랬다는 거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내 눈을 보고 우리 솔직해지자. 모양 얼추 비슷하니까 뭐 별거 있겠나 싶어서 으레 짐작하고서는 이런 표기는 분명 작가의 심오한 의미가 있을 거라며 혼자 소설을 쓰고 있었던 거잖아. 잘 들어봐. '알고 있다'의 최고의 경지는 '설명'하는 거야. 네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때려 맞추겠다는 상상은 버리고 발품 팔아 찾아보라는 걸 우리는 '공부'라고 부르지. 괜찮아 우리, 특히 너는 영원한 학생이고 그런 반성하는 자세는 좋아. 그리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 아니겠어? 토닥토닥.
리스트가 편곡한 베토벤 협주곡 7번 2악장을 연습한다. 곡의 길이와 전체적인 난이도 때문에 이 곡을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음울하기도 하고 서정적이면서 때로는 웅장하게도 느껴지는 도입부만이라도 내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비슷비슷 패턴 덕분에 조금 수월하게 한 마디씩 따라가지만 3페이지를 넘어가면서 (전체 8페이지 악보 중) 힘이 부치고 내 손의 크기가 리스트의 손과 다르다는 걸 실감하면서 얕은 한숨을 내쉬곤 한다.
시작부터 스타카토와 연결표기가 함께 등장한다. 스타카토는 뭐 잘 알고 있지. 짧게 끊어 치면 되는 거고, 같은 음에 있는 연결표기는 붙임줄이니 뒤에 음까지 연주를 안 하면 된..... 어...?? 귀로 암기한 연주곡을 떠올리면 분명 연주를 하는 음이었다. 아... 붙임줄에 스타카토가 있으면 다시 한번 스타카토를 연주하면 되는구나. 레가토처럼 부드럽게 끊기지 않으면서.... 흠.. 그런데 스타카토를 부드럽게 하라면 어떻게 한다는 거지? 나에게는 악보보다 귀로 익힌 음이 우선이었고, 반대로 그렇게 들은 걸 악보와 맞춰 나갔으니 연습이 완전 엉망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무려 두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이 생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나는 메조스타카토가 무엇인지를 이제야 배운다. [mezzo: 중간의, 적당히, moderately] 음 길이의 3/4 정도로 연주하는 메조스타카토이다. 연주 방법이 스타카토와 전혀 닮지도 않았고 스타카토라는 것도 보다 정확한 정의는 무조건 짧고 힘 있게 끊어서 연주하는 게 아닌 음 길이의 1/4 정도로 연주하라는 의미다. 그러니 이제서야 나는 스타카토의 의미를 '짧게 끊어서 연주한다'가 아닌 '음의 길이를 줄여서 연주한다'고 고쳐본다. 스타카토의 해석법이 하나가 아니었던 것, 그리고 연결기호는 이 세상에 붙임줄, 이음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활용법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알아가는 건 즐겁다. 정확히 모르는데 넘어가려는 건 고쳐야 할 잘못된 버릇이고.
Listz 편곡, Beethoven Symphony No.7, Op. 92, 2악장.
베토벤이 1811~1812년에 작곡한 협주곡 제7번을 리스트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곡이다. 리스트는 존경하는 베토벤의 많은 협주곡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였다. 장송곡 같은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짧은 동굴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오듯 이내 사라지고 대지의 목가적인 분위기로 스르륵 흘러가며 감상할 수 있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베토벤 원곡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서 오히려 원곡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고 원곡을 들어도 피아노소리가 머릿속에 맴돌곤 하는 건... 부작용?
PS. 3주전 다녀온 한라산 등반사진은 본 주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 그냥 좋아서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