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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an 08. 2024

쉬운 곡을 아름답게

올해는 좀 즐겨보렵니다.

    엊그제 뿌연 하늘에 미세먼지는 '나쁨'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오늘 저녁은 '좋음'을 가리키고 있다. 바깥 추운 날씨보다 미세먼지 '좋음'은 굉장히 유혹적이기에 옷을 껴 입고라도 저녁 산책을 나서본다. 확 트인 공원으로 나오니 밤하늘의 오리온 삼태성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고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곧장 집으로 돌아가 쌍안경을 들고 다시 나왔다. 희미한 오리온성운과 무수히 많은 별들은 겨울 밤하늘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일 것이다. (잠깐 옆길로 새어보면, 겨울은 별과 은하수를 쫓는 마니아들의 시즌이다. 저는 마니아까지는 아니고요. 우리나라는 별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1년 중 1개월 정도일 뿐입니다. 구름 없고, 미세먼지 없는 두 가지는 기본이요, 장시간 노출을 해야 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카메라에 김이 서리지 않고 이슬이 맺히지 않을 정도의 건조함과 아지랑이가 없는 적당하게 낮은 기온 등을 따지면 더더욱 하늘을 올려달 볼 날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광해(빛 공해)도 피해 도시를 떠나 도망쳐야 하고요. 그래서 최적의 계절이라는게 지금 겨울이라니 이제 한 밤중, 새벽녘의 얼음장은 보너스가 되겠습니다.)


    하... 못해 먹겠다. 시원하게 악보를 덮어 버렸다. 거의 한 달 반 동안 들춰본 리스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7번의 편곡 버전을 연습하다 새해를 맞았으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던 짓을 멈추었다. 총 8페이지 악보 중 3페이지까지는 어찌어찌해 보다가 4페이지에 넘어오면서 악보 읽기부터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튜브의 연주를 들어도 내가 보고 있는 악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직관적으로 매칭이 어려운 부분들이 보이니 돌다리 앞에 서서 두들겨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시원하게 뒤돌아 섰고 시원하게 악보도 덮어 버렸다. 리스트 쫓아가려는 버거운 왼손 벌리기도 영향을 준  분명하다.  지금 왜 이러고 있니? 나 지금 스트레스받고 있는 거야? 


    취미생활에 스트레스받으면 안 되지. 비장할 건 없는데, 다만 자꾸 스스로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 2024년 새로운 해를 시작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되돌아본다. 새해를 맞아 딱히 뭔가를 바꿔보겠다는 생각 없었지만 연습에 스트레스는 조금 줄여보고 연주를 즐겨보자는 막연한 다짐을 해 본다. 결국 난이도를 낮추고, 하고 싶은 곡이 있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꾹 참고, 쉬운 곡을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연주하라는 슈만의 조언을 되돌아본다. 더 길게 쓰지 못하겠다. 왜냐면... 정말 생각이 없었거든요. 하하


쉬운 곡을 훌륭하고 아름답게 연주하도록 노력하라 - 슈만


    헨레 난이도로 따지면 5.5가 한계로 보인다. 물론 지금까지도 난이도를 무시하고 덤벼들었다는 건 아니지만 5.5 수준이 넘어가면 '즐기는'연주는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피아노를 즐긴다는 게 뭐였을까?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흘러가는 데로 몸을 맡기고, 손 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그 아름다움을 쫓아갈 때 비로소 나는 그 즐거움에 빠져들어 몰입된다. 즐기는 순간이다. 


헨레 난이도 5.5 가 어떤 곡들 인고하니... 쇼팽 녹턴 Op.9-1/9-2/55-1 (5.5), 모차르트 소나타 Op.331 터키행진곡 (5.5)쯤이 되겠다. 참고로 모차르트 소나타 K545는 (4.5).




리스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No.7 2악장. 4페이지. 여기서 악보를 덮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리스트는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그냥 베토벤의 광팬이었다. 팬은 가수의 노래를 대부분 알고 따라 부를 수 있다. 찐 팬은 가수의 앨범을 모으고 콘서트를 따라다닌다. 광팬이면 음... '스토커' 신고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리스트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베토벤을 자기 것을 만들고 싶은 진정한 광팬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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