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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pr 06. 2024

리턴 투 즉흥환상곡

음악에 고백한다.

음악에 고백한다.


    쇼팽 즉흥환상곡을 다시 펼쳤다. 얼추 3년 전 즈음에 그분이 번쩍 오셨을 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서 이 곡을 정복하겠다고 했던 몸부림이 떠오른다. 달리 얘기하면 이 곡에 빠져서 피아노를 다시 해보자는 의지를 불태웠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선언하고 혼자 연습하고 혼자 뒹굴었다.


    즉흥환상곡... 그래, 환상적이지. 잠깐 곡을 소개하자면, 쇼팽의 4개의 즉흥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고, 쇼팽 본인은 자신이 죽은 뒤 이 곡은 폐기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친구가 이를 출판했다는 일화도 있으니 역시 될 놈은 된다는 것과 또는 결국 유언대로 사라진 곡이 있을까 하는 엉뚱한 감탄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곡이기도 하다. 감미로운 선율 외에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왼손과 오른손의 박자가 서로 다른 폴리리듬(이 곡의 경우 오른손은 16분 음표를 연주하는 사이 왼손은 셋잇단 8분 음표를 연주)인 데다 엇박자로 시작하는 것 때문에 연주의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폴리리듬에 익숙해지면 난도가 아주 높은 곡은 아닌 듯하다. (이런 표현은 참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물 흐르듯 연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음... 불협화음이 많고 박자가 바뀌고 조성이 바뀌고 뭔가 패턴을 찾기가 어려운데 짚어야 할 화음은 많고 아티큘레이션은 번쩍번쩍 튀어나오고 손가락이 뒤엉키는 건반 위치, 도약도 심한데 속도까지 빠른... 뭐 이런 게 어려운 곡 아닐까 싶다. 이런 것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어려운 곡은 아니라는 의미다.


   3년 전 그렇게 마음으로 연습을 시작했고, 100시간을 찍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악보를 덮었지만 이번에 다시 도전하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이제 내 손가락은 충분히 다듬어졌으니 이제는 찢어 먹을 수 있다는 그런 비장한 각오는 없다. 서당개 3년... 아니, 분식집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3년 동안 피아노와 함께 했던 연습의 노하우로 손끝 감각이 좀 더 쌓였으니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더 좋아졌을 거라 믿어봤다. 그건 그렇고..  덮었던 이 곡을 갑자기 다시 들춰낸 이유는 뭘까? 주섬 주섬 내 마음 구석구석을 뒤적여가며 찾아낸 이유라'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하고 싶다. 음악은 고백이다. 이렇게 고백한다.


   초심이란게 무엇일까? 배우는 게 재미있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앉아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마음. 이 곡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쇼팽이라는 사람은 누구지? 언제 작곡한 곡이지? 폴리리듬이란 게 뭐지? 이 악상 기호를 뭐라고 부르는 거지?그 무엇이든 알고싶은 마음. 같은 곡인데 연주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다른 향기를 품을 수 있구나... 하나하나가 호기심 덩어리라 연습도 좋았고 여기저기 인터넷 찾아가고 기록하면서 알게 된 배부른 지식의 양식도 좋았다. 그래... 사랑에 빠졌었다. '초심'의 힘으로.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금 그 힘이 없다. 열정이 없다. 사랑이 없다. 근육도 쏙 빠져나가 앙상하게 말라있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피아노 앞에 진득하게 앉아 몰입 연습을 본 지가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이니 최소 서 너 달도 훨씬 넘은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으름이 서로 핑퐁 치듯 몰려오고 피곤하다 하루 쉬고, 술 먹고 이틀 쉬고...  그렇게 몇 달을 시원하게 날려먹었다. 피아노는 없었다.


    그 때를 그리워하면 피아노 앞에 앉아 본다. 잠시 딴 얘기를 하면. 다시 연습을 시작하면서 경이로운 인체의 신비함을 느낀다. 배는 더 나온 것 같고, 눈은 분명 더 침침해졌지만 몸은 정말 정말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맨 처음 한 음 한 음 짚어갔던 냄새마저 얼핏 떠오른다.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3년 전 했던 실수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 음표를 잘못 읽고 한동안 잘못했던 연주, 예를 들면 페달을 제 때 떼지 못했던 위치, 실수했던 음 등이 그렇다. 잘 길러진 습관도, 잘 못 길러질 습관도 고스란히 뼈 속까지 새겨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와우! 스스로 깜짝 놀란다. 이런 점을 비춰보면 어렸을 때부터 부단한 연습을 했으리라 생각되는 피아니스트들이 그 많은 곡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그 손놀림까지 따라가는데 10시간 정도 걸렸을까? 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걱정도 있었지만 조금 천천히 그리고 조금 헛발질도 날리면서 연주는 이어갈 수 있었다. 어떤 공부를 하든 자신의 실력을 갈고 딱기 위해서는 연습의 흐름이 끊겨서는 안 되고 때로는 치열하게, 근육에 통증이 느껴지고, 겨드랑이에 땀이 날 만큼 집중해서 나의 한계의 경계를 살짝이라도 밀어 올려야 실력이 눈곱만큼 늘어난다. 그 눈곱이 쌓이고 쌓이면서 내공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거늘.  경계를 살짝 밀어 올렸을 때 느낌은 참 자유롭다. 그 자유로운 순간 막힌 혈관이 정말 뚫리는 건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찌뿌둥하던 몸은 가벼워지고 머리까지도 맑아진다. 힘줄에 피로가 있긴 하지만 몸은 상쾌해진다. 긍정의 기운이 올라온다.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글 쓸 시간도 없습니다. 연습합니다. 연습!

쇼팽 즉흥환상곡 14마디. 오른손 3번, 4번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앞으로 하농 10분 때리고 연습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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