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고 짠 음식이 피아노 연습에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부터 나의 주적(主敵)이다! 네?? 뭔 소리임??
꾸준하지 못한 연습은 좋은 습관이 아니다. 하지만 회사 출장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일주일간의 해외출장으로 잠시 피아노를 잊고 돌아오면 뭔가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굴리면 조금 둔해지긴 했어도 감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전에 잘 안되던 부분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니 날마다 연습보다는 가끔은 좀 쉬어주는 것도 좋은 건가?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그 기간이 일주일 정도였으니 다행이지 한 달이 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술! 이것도 피아노 연습에 좋지 않은 녀석이다. 단 5분만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로 음주를 하고도 연습을 하는 건 참 기특한데 대부분 기억에 없지만 가끔 남아있던 기억을 더듬어보는 건 썩 좋지 않은 기분이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다가 막 들어와 씻지도 않은 손으로 여기저기 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술 향기(?)가 피아노 건반 사이사이로 배어들어가 있을 것 같아 환기를 해야 한다. 물론 기분 탓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대부분 술을 먹은 날, 숙취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다음 날, 혹은 완전히 회복하는 셋째 날까지 피아노 앞에 앉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 연습한 것 잊어버리기 딱 좋은 3일이 된다.
그러다 최근에 나의 찐 주적을 만났다. 바로 맵고 짠 음식이다. 요즘 들어 손가락이 붓는 경우가 많아졌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면 그러려니 하다가 언제부턴가 그 빈도가 잦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유를 찾아 여기저기 의학 지식을 뒤적이다 내린 결론은 맵고 짠 음식이었다. 특히 짠 것! 몇 번의 실험(?)을 거쳐 맵고 짠 음식을 신나게 먹었던 다음날 이 문제가 생긴다는 걸 확실하게 알아냈다. 이유 없이 부어오르면 병원으로 직행해서 피검사부터 받아야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한 번 부으면 반나절 정도 지나면 가라앉기는 하지만 손가락을 쥐락펴락 하는 동작이 무겁고 날렵하지가 않고 하루 온종일 무거운 이삿짐을 나르다가 온 것 마냥 손바닥 피부는 통통해지고 거칠어진다. 근육이 경직된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감각이 급격히 둔해진다. 내 손이 아닌 것처럼.
(참고로, 반나절이 아니라 하루, 이틀 지나도 가라앉지 않은 것 역시 진지한 병원검사를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신장이 좋지 않거나, 손가락 통풍, 관절염.... 다들 들어보셨죠?)
손가락 움직임이 둔해지면 건반을 다루는 손놀림이 모두 부자연스러워지지만 특히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 밑으로 들어가는 그런 자세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다. 아르페지오가 삐걱거리고 부드럽게 흘러갈 수가 없으니 빠른 곡 연습이 될 리가 없다. 손가락, 손바닥이 부어올랐으니 그렇지 않아도 투박하고 못생긴 두꺼운 손가락들이 서로 살결을 부딪히는 게 느껴진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금세 피곤해진다. 하... 의. 욕. 상. 실.
주말 아침 산책을 나가려다 문을 열고 공원 입구에 겨우 왔는데 숨이 턱 막혀오니 산책이고 뭐가 아침부터 뜨거운 햇살을 피해 요리조리 그늘을 찾아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산책을 하면서 혈액순환을 좀 하면 부어있는 손가락이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오늘은 안될 것 같다. 이 더운 날씨에 반신욕으로 몸의 체온을 높여보면 좋아지려나.. 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더운 열기를 가지고 하논으로 달려보면 좀 나아지려나? 지금 이 무거운 손으로 다른 연습은 안될 것 같아 에어컨, 선풍기 쌍으로 틀어놓고 하논으로 오늘 산책을 대신해 본다.
나중에 기력이 빠져도 피아노 취미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뿐이겠는가? 무슨 취미든 그것도 건강해야하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