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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pr 29. 2022

보컬로이드 (Vocaloid)

새로운 장르의 태동

보컬로이드


첫 째 아이의 수술 날이 바로 내일이다. 다행히 간단한 정형외과 수술이라 입원, 수술, 퇴원까지 모두 3일이면 마무리되는 짧은 일정이라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아이는 공식적으로 학교를 안 가도 되는 도장을 받았으니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어디 여행길 가는 기분인 듯 보인다. 그간 가까이서 보아온 아빠가 긍정 끝판왕인 것만큼은 인정해준다. 날씨마저도 아빠와 딸내미 둘이서 차 안에서 떠들기 딱 좋은 화창한 날씨이니 수술이고 뭐고 당장은 모르겠고 이미 몸은 들썩거린다.


    여기에 음악이 빠질 수는 없다. FM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클래식 피아노 곡을 듣다가, 아이가 예전에 좋아했던 AKMU를 번갈아가며 무작위로 듣는다. 그러다 갑자기 요즘 아이가 흥얼거리는 일본 노래가 생각났다. 집에서 날마다 흥얼거렸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으니 병원 가는 신나는? 길에 창문 열고 볼륨을 높이고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좋아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이를 이해하는 것 중에 하나이니까. 세대를 넘나들어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아빠가 좋아하는 클래식과 록 음악은 아이에게 버림받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음악 장르는 무궁무진하고 취향은 계속 바뀌어 갈 것이라 그 종착역은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다르면 어떠하랴, 서로 취향이 다르기에 서로 다른 세계의 음악도 들어볼 기회는 더 많아질 것이니 오히려 환영하는 바이다. 아이의 긍정 끝판왕이 누구에게 물려받았나 보다.


    TAMAYA. J-POP의 한 장르로 보컬로이드 인기곡이라고 소개해준다. 보컬로이드. 생소하지만 이름에서 뭔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가수 이름인가? 네가 좋아하면 나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마음은 이미 열려있다. 그런데 웬걸. 애써 마음 기울일 필요 없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댄스음악 같은 멜로디와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기 넘치는 독특한 목소리가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어릴 적 테이프를 2배속으로 돌리면서 들었던 딱 그 목소리 같았다. 딱 한 번 들은 후렴구가 바로 입에 착착 붙는 게 수능 금지곡쯤으로 해야 할 대중성도 감지된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팬덤이 얼마나 많은지 좀 더 찾아보니 작곡가 Chinozo v flower (사실, 이걸 제품명이라고도 부른다) 구독자가 40만, 2년 전 올린 동영상 음원은 조만간 1억 뷰를 찍을 기세다. BTS의 7천만 구독자에 수 억 뷰를 비교하면 인기는 나쁘진 않아 보인다. 내가 잘 모른다 하여 폄하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 될 뻔했겠는가? 그런데 딸내미 혼자만 이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나눌 얘기는 아니라고 하니 아웃사이더 냄새도 진하게 흘러나온다.


    새로운 시도는 항상 신선하다. 패턴이 예측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준다면 새로운 시도는 신선함을 준다. 현대음악처럼 시작은 신선한데 오래 듣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패턴을 통한 예측의 묘미가 사라지면 남는 건 그 무엇이 터져 나와도 놀랍지 않을 순수한 기대감이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해소될 때 신선함을 느끼는 것이고.


    보컬로이드(VOCALOID)를 찾아보니 야마하에서 개발한 음성합성 엔진을 가리키는 Trade Mark이다. Vocal(목소리)와 oid (~와 닮은) 두 단어의 합성어이니 무엇을 하려는 소프트웨어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2004년에 개발되었지만 초기 산업적 목적이었고 상업성을 발견한 건 그리 오래된 건 아니라고 구글은 설명하고 있다. 남성 목소리, 여성 목소리, 이와 함께 어울리는 캐릭터도 등장하니 엔터테인먼트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프로그램이기에 인간의 가성 능력을 넘어서는 옥타브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이질적인 느낌도 든다. 오히려 '나 사람 아니야, 너희는 이런 소리 낼 수 있어?'라고 으쓱하는 듯하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잉크를 물 컵에 떨어트리면 자유롭게 퍼질 뿐 모이지는 않지. 물리학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의 이치일 것이고. 언어는 확장되고,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혹은 세상 어디쯤에서 세상으로 이동해왔고, 단세포 생명체는 수 천만 종으로 진화했고, 동굴 벽화에서 예술은 시작했고 새로운 장르는 변주곡처럼 무한히 생성되고 있다. 팝송, 브릿팝, 블루스, 재즈, 록, 메탈, 힙합, 일렉트로, 클래식, 국악, 크로스오버, 제3세계 어느 장르 하나를 찍어도 사전 두께만큼의 책은 나올 것들이다. 역사로 보면 클래식과 국악의 무게가 다른 장르를 모두 흡수해도 모자를 듯해 보이니 같은 선상으로 보는 건 반발이 심할 듯하네요.


    여하튼, 이제 여기에 보컬로이드라는 독립된 장르가 덧붙여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이미 AI 시대로 접어들었고 가상 인간도 점점 더 자주 등장하니 그 가상인간에게 어울리는 목소리를 갖춰주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순서로 보인다. 어쩌면 시대의 필연처럼 보이는 장르라고 할지 모르겠다. 운이 좋다면 내가 새로운 음악 장르의 태동을 목격하고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한 흥미로움이 관심 포인트이다. 일렉기타가 발명되고 또 다른 수많은 음악 장르가 태어났듯이 단순히 흔한 POP 장르라고 하기에는 인간의 진짜 목소리가 없이도 가사 있는 노래가 나온다는 건 큰 사건이라 생각된다. 진짜 인간의 목소리인지 조차도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만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 할지라도 그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을 듯하다.


    어쩌다 보니 병원 가는 길 딸내미가 추천한 보컬로이드 곡 하나가 지금도 입가에 맴돈다. 자꾸 뱉어내는 TAMAYA 허밍에 아이는 공감의 의미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YouTube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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