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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ug 07. 2022

조급증이라는 나잇병

살아보니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

    한국인에게 빨리빨리 습관이 뼛속까지 묻어 있다는 게 타고난 DNA에 묻어 있다는 것인지 고도성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후천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인생에서도 그 빨리빨리 성질이 누구 못지않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 내 이름의 한자를 보고 "불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물도 들어있네?"라며 지나가면서 툭 던지신 적이 있다. 그 당시 선생님께 불 같은 성질을 보여드려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가 물 같은 성질만 보여주었다. 불같이 급한 성격인 사람들을 볼 때면 빨리 일어나고 빨리 일하고 빨리 승진하면 빨리 죽는 것 밖에 더 하겠나? 라며 비아냥거리면서도 그건 정신승리를 위한 누워서 침 뱉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걸음도 빠르고, 벌어지지 않은 일에 과하게 고민하거나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불편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뭐라도 빨리 결론 내고 잊어버리려는 모습이 그렇다.


    직장생활 20년을 넘기면서 직급은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올라간다는 법칙은 내가 찾는 물건은 마지막으로 찾아본 곳에서 발견한다는 머피의 바보 법칙과도 같지만 어쩐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 묘하게 설득되고 수긍하고 만다. 그렇다면 드디어 나의 한계를 마주한 것인가? 그래도 여태껏 쌓은 경륜이 있고 부대끼며 살아온 인생 인지라 나도 몰랐던 내가 잘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타고나게 못 하는 것이 점점 커 보이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려는 상황에 부딪히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정말 노력이나 했는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오늘도 흐뭇하게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의 절반 능선을 넘어갔음에, 그리고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대한 생각, 사색, 반복하는 고민. 내일 할 일을 오늘 고민하고 그 고민이 끝나면 이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읽지 않은 메일을 남겨두는 여유로움은 사치인 것 같아 보였다. 혹시 고민하는 게 숨겨진 취미였던 거 아닐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 힘들게 사는 척하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지도 모른지도 고민한다. 경중 완급 좋은 말은 잘 하지만 무작위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렇게 정리되지 않았고 선입 선출해야 하듯 순서대로 처리해달라고 결정을 기다렸고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메모를 시작했다. 메모는 정말 좋은 습관이다. 그런데 메모의 양이 점점 늘어난다. 메모가 많으니 메모 중에서 중요한 것을 간추려 메모를 옮긴다. 이거 끝은 있긴 한 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고민의 결과가 근거 없는 낙관론이든 답 없는 망연자실이든 늘 정신 승리를 외치는 거울 속의 배경화면은 한 마디로 '조급증'이었다.


    조급함은 무엇이든 잘하려는, 잘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와 사촌쯤 되는 듯하다. 미리 걱정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스스로 늙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 나타나는 '나잇병'이라고들도 한다. 하지만 조급함 덕분에 미리 준비하여 계획적으로 움직여 나쁠 건 없었고 오히려 덕을 많이 보고 살아왔다고 생각하기에 80%의 부정적인 의미보다 20%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 옹호한다. 준비성이 좋다느니 등 얼마든지 포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성비를 따져보면 분명 만족스럽지는 못한 듯하다. 누군가는 그렇게 못해서 나와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조급함을 버려야만 더 많은 걸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이 조급함은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내가 다스려야 할 약처방도 없는 가장 큰 병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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