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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엄마... 할머니... 보고 싶네요.

by KayYu

밝은 밤 / 최은영 / 2021


내 얘기를 해 보고 싶다. 나에게도 어머니가 있고 외할머니도 있고 기억에는 없지만 외조부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증조, 고조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계셨겠지만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그분들은 마치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존재하지 않았던 분들로만 느껴진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기원임에도. 외할머니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셨다고 들었다. 서예가로 작품 활동도 활발하셔서 전시회도 하셨고 관련 예술인들과 여러 친목회 그리고 교회 활동으로 여러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고 계셨다고 들었다. 유치원 생일파트 사진에는 엄마를 대신해서 외할머니가 계셨다. 그런데 어쩐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와 외할머니의 관계가 그리 따뜻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게 느껴졌나 보다. 재혼하신 외할버지는 어린 손주에게 따뜻했던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얼마나 더 아픔을 겪으셨겠나. 물론 이런 모습들은 내가 보고 들은, 혹은 일부러 어린아이 앞에서 감춰 진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어떤 이유로 엄마는 한겨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그 속에서 불을 밝히고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게 해달라는 애원을 해도 할머니는 들어주지 않은 게 너무 서럽고 눈물 났다고 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밝지 않았고 사랑도 받지 못했기에 외할머니를 향해 서운하다 못해 한이 맺히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마에게서 외할머니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나에게는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외할머니가 따뜻하게 느껴질 리 없었다.


시간은 60년대 말이다. 그런 어려운 환경을 당신께서는 눈물로 이겨내고 대학까지 들어간 건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셨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당시 학교 선생님이 부족한 시절에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시험만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채용되셨다고 했고 명예퇴직까지 하셨다. 배다른 이모와는 교류도 소원했고 그렇다 보니 이모에 대한 감정도 항상 차가웠다. 배다른 이모라는 것도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잘 살아'라는 한마디를 남기니 난 더 이상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더 희미하다. 그래서 최은영의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로 이어지는 100여 년 간의 여인들의 가족사는 나의 엄마의 가족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기억은 얇고 진솔한 얘기를 듣지 못한 채 어머니와 영원한 헤어짐을 맞이하였다. 그 사실이 서글프다. 참 서글프다.


밝은 밤은 언제 일까? 백야의 북유럽 어디쯤이 아닐까? 아니면 초신성이 폭발하여 그 빛이 밤에도 환할 만큼 빛나고 있을 미래의 언젠가를 가리키는 것일까? 백야, 초신성 이런 단어가 낯설고 엉뚱하기는 하지만 영겁의 시간에 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이 그저 한 순간임을 직시하게 하는 학문이 천문학이라면 작가는 말 돌려 표현하지 않았다. 백 년에 걸친 가족 여인들의 고달픈 우리의 삶. 특히나 식민지, 전쟁을 겪은 할머니 세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가슴 무거워지는 얘기를 하나쯤 가지고 있으리라. 고초를 겪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더 비극적인 삶은 그 순간으로 끝났으니 지금까지 전해 오지도 못함을 생각하면 가슴은 더 먹먹해진다. 이 모든 얘기가 우주의 먼지 하나로 망각의 시간으로 사라진다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이 소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문득 의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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