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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l 16. 2022

초보자의 스윙

아 쫌, 제발 좀 시킨 대로 합시다. 마음이 다치기 전에

    언제부터인가 직장인의 필수 스포츠로 골프가 되어 버렸을까? 어린 시절 화려한 스키복을 입고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은 돈  집안에 그들만의 전유물처럼 살짝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시절이 생각난다. 골프도 그랬다. 스키보다 더 매섭게 바라봤고 회사에서는  골프를 접대비리의 온상처럼 회의적인 눈길은 절대 받을 수 없는 스포츠로 각인지었다. 허나 스키도, 골프도 결국 대중 스포츠로 내려왔다. 여하튼 골프만의 손맛이 우리들을 노래방이 아닌 스크린 골프장이라는 또 다른 밀폐된 공간으로 밀어 넣은 것은 분명하다. 스크린골프의 기술발전과 한국 골프스타 등극의 영향도 지대했을 것이리라.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공식으로 그룹에서 빠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은 덤이었다. 골프라는 단어 옆에 '접대'라는 수식어도 처음부터 붙은 건 아닐 것이다. 고객 접대, 상사 접대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데 반대로 이 세상 스포츠 뒤에 항상 붙어야 하는 건강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아직까지도 어색해 보인다. 회사생활 좀 했는데 더 이상 다른 골프의 목적이 떠오르질 않을 정도면 나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학창 시절 책가방도 들고 다니지 않으려 도서관 비좁은 사물함에 가방을 밀어 넣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그 무거운 클럽을 들고 어떻게...


    골프라는 운동은 클럽과 공의 타점을 제대로 맞추기 위해 정확하게 동일한 자세가 필수고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구간별로 동작을 나눠 자세 수정하기를 수 없이 반복하면서 몸에 익히는 훈련을 한다. 머리보다 몸이 빨라야 하고 영혼이 이탈할 즈음까지 되새기고 머리가 그 순서를 잊어버렸더라도 몸이 기억할 때까지 그 짓을 반복한다. 클럽을 휘두르는데 그리 어마 어마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똑같은 동작을 해서 항상 똑같은 거리를 날리도록 하는게 목표다. 그렇게 목표는 단순한데도 이를 가르치는 방법이 유별나게도 오만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운동 신경은 젊을 때 처럼 날렵하지 못하고 몸은 굳어 있어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되니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들일 것이다. 그렇게 동영상을 틀어놓고, 레슨을 받아가며 이미 굳어버린 몸치의 몸을 비틀고 안쓰는 근육과 영혼을 나무라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결국은 똑같은 말을 해댈 거면서.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 무언가를 배우는데는 그 과정은 별반 서로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단지 훈련의 범위가 몸 전체를 쓰는 것인지 손목부터 손가락까지를 쓰는 것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물론 전문 연주자라면 앉는 자세, 팔의 높이 등 세세하게 다루겠지만 아직은 그런 경지는 아니다. 필드를 누비는 것인지 88개 건반 위를 누비는 것인지도 차이 정도? 손가락 순서도 머리로 먼저 익히고(악보를 보고), 천천히 한 동작씩 움직이다가(마디, 절) 점차 속도를 빨리한다(머리보다 빠른 몸의 기억력). 손에 힘을 빼야한다는 것도 똑같은데 역시나 굳어버린 손가락과 삐거삐걱 소리가 나는 듯 덜컥거리는 관절, 어디에 둬야할 지 모르는 악보와 시선의 위치. 그저 정신승리로 여기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버텨낼 처지다. 한 곡을 마스터하는 순서는 그렇게 스포츠를 익히는 훈련과 완전히 동일했다. 집중력이 희박했던 카이는 그래도 피아노 앞에 있으면 한 시간은 버텨낸다. 정말 피아노와 골프에 미친 사람들한테서 어디서 한 시간을 '버텨낸다'고 명함을 내밀겠느냐만은. 신기한 것은 골프 스윙 한 시간을 해도 땀이 흐르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닌 손가락만 들락거리는 피아노 연습 한 시간에도 이마에 땀은 맺힌다는 점이다.


    당분간 검정, 하얀 건반만을 유일한 취미로 집중해 보기로 하면서 다른 어떤 활동에도 관심은 알코올처럼 휘발되어 사라져 버린다. 식욕이 떨어진 환자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몇 번의 좌절을 맛보면 다시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골프 연습장의 음악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마음은 건반 위 악보가 어른거리고 입가에서는 흥얼거림이 떠나질 않고 있으니 타점도 빗겨나가 저 멀리 헤져드에 쏙 들어가고 만다. 피아노도 초보, 골프도 초보인 선수인데 뭐 좋아하는 거 하나 생기면 두 가지를 같이 하질 못하는 성격이니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고 마음만 심란해질 뿐이다. 클럽에서 힘을 빼야 하는데 힘이라도 잔뜩 들어가서 팔, 손목이 피로해지면 피아노 연습이 잘 안 될까 하는 걱정이 먼저이니 좀처럼 연습에 진심을 쏟을 수가 없곤 했다. 골프는 적당히 하다가 잠시 쉬워야겠다는 명분을 차곡차곡 잘도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골프 레슨 2개월째 접어들었던 어느 날 나를 지도하던 강사가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그래도 경원 씨는 제 얘기를 잘 따라주니까 좋네요. 뭐 마음만큼 따라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레스너인 거죠. 네? 하하. 전 시킨 거 잘해요. 그런데 배우는 사람이 강사 말을 들어야지 안 듣는 사람들도 있나 보네요? 아이고야. 얼마나 많은 데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을 잘 안 들어요. 이렇게 하시라고 해도 볼 때만 그렇게 하고 뒤돌아서면 자기 방식대로 하는 사람들, 모르는 것 같지만 다 보입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 중에는 강사를 가르치려는 사람들도 많죠. 아... 그렇군요. 잠시 생각해보면 다들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하나쯤 있는 사람들이니 그렇지 않고서야 자격지심에 선생님을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접 두 분으로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이 레슨을 받는 목적은 단지 자기가 하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안 해도 잘 치는 희귀한 동영상을 찾아와 확인시켜주면서 이기려 든다고도 한다. 아마 핀트가 어긋나면 강사를 바꾸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맞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해내서 강사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 드는 부류. 그 옹졸한 상황이 상상도 가고  이유도 이해는 된다. 급해도 천천히 기본부터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야 하는데 지름길 찾으려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것 같다. 그걸 굳이 몸소 체험하지 않아도 깨닫고 바른 길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름길 찾기 유혹은 피아노처럼 실력 향상이 정말 더디고 어려운 경우에 더 많이 있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더 쉬운 방법, 더 편한 방법으로 하려는 성향은 강해질 것이고 엉뚱한 희생량을 찾기도 한다. 체르니나 하논을 꼭 해야 하나요? 재미가 없다는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반대로 체르니나 하논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있을까? 반주를 곁들이며 친구들과 노래 부르는 정도에 만족할 수 있다면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그 곡에만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높은 바람을 가지고 있으니 해볼 만큼 해 보았다고 할 만큼까지는 그냥 해보자고 다독인다. 세상에 널린 수많은 클래식 명작들을 즐기고 싶으니 그냥 끝까지 가보자고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연습곡 교재도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어려워지지만 그것도 하나의 엄연한 작품이니 하나씩 완성할 때의 성취감은 왜 연습을 계속하게 만드는지 말해준다. 지금 매일 조금씩 하는 연습 교재가 산전수전 겪은 강사님이라 생각한다면 믿고 끝까지 가봐야겠다. 이미 오래전에 의심을 했고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이제는 같은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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