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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l 31. 2022

체르니와 하논

익숙한 이름이지만 솔직히 친해지기는 어렵지

    체르니, 하논. 난 30 년 전의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배운 교수법이 내 피아노 기초의 전부이. 그러니 누군가 체르니와 하논이 구시대적인 교재라 하여도 애정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었을 음악가 이름이다. 체르니 30, 40, 50, 100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가 피아노를 얼마나 배웠느냐는 질문과 동급을 이룬다. 행여나 두 교재를 거치지 않고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면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없기에 어디서나 비교 우위를 점령하고 싶은 엄마들은 당혹스러워 할 수도 다. 익숙한 클래식을 모아둔 소곡집도 곡의 난이도를 체르니 몇 번의 몇 번 수준으로 표기해 놓기도 한다. 외국 상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상대적인 비교는 안되지만 우리나라 피아노 교육에 있어서는 분명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서야 음악의 즐거움 그 자체에 무게를 두고 자체 발간한 교재를 도입하는 학원도 많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체르니 하논 두 기둥이 여전히 든든해 보이고 앞으로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둘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것은 피아노 테크닉이다. 음표에 표기된 위치대로 건반을 누르는 게 왜 그리 힘든지. 우리들은 그걸 익히기 위해 손가락에 땀나도록 두들겼나 보다. 지금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엇을 배우기 위해 체르니, 하논에 목을 매었는지  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남들도 하니까, 시키니까 했다. 음악을 배운다고 느꼈던 적도 없었다. 테크닉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걸 배우려 노력했던 기억은 있지만 그 노력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도 없고 근본적으로 음악이란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던 국민학생이었다. 차라리 중학교 시절 처음 들었던 사이먼 & 가펑클의 팝송을 들으며 매력적인 목소리에 빠져들었을 때가 오히려 음악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음악을 알기 시작한 전환기의 시점이었다고 어렴풋이 기억해 내어 본다. 체르니, 하논이 역시나 재미없다는 사실은 성인이 되어 여러 음악 관련 책을 접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테크닉 교육 측면에서 체르니(Karl Czerny, 1791-1857)는 될 때까지 한다는 무한반복을 사랑했다. 무한반복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듯 어질어질해진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잘 안되면 잘 될 때까지 한다는 철학도 전략이라면 전략이겠다. 그리고 그는 음악과 테크닉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음악을 느끼기 전에 테크닉부터 배우라는 의미다. 좀 더 과격하게 얘기하면 테크닉도 모르고서 음악을 할 수 없다는 강경함이다.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다', '왕도는 없다' 이런 속담들을 떠올리며 찬성표를 던져주기도 한다. 베토벤이 스승이었고 리스트가 그의 제자였으니 그를 변호해줄 사람은 많고 이것만으로도 입지적인 인물임은 틀림없다. 하논(Charles Louis Hanon, 1820 - 1900)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다섯 손가락이 독립적으로 충분히 훈련되어 움직여야 작품의 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Carl Czerny

    이렇게 체르니-하논의 두 음악가의 철학은 음악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악보에 표기된 음을 지정된 속도와 셈 여림으로 기계처럼 정확하게 누르는 것을 우선시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보다 더 위대한 우리 피아노 선생님들은 그들 교재로만 하면 음악을 어린 나이에 지루함과 괴로움의 기억만 가진 채로 포기하게 되지나 않을까 될까 봐 걱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우리 선생님들은 귀에 익은 클래식 곡으로 구성된 소곡집이나 명곡집을 함께 끼워 넣었다. 물론 더 친근하게 다가가서 진짜 음악을 즐기고 싶다면 클래식이든 팝송이든 가요든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면서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음악교육의 목적은 어느 정도 성취하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반대로 좋아하는 곡만 하고 연습곡을 하지 않는다면 테크닉의 향상이 더딜 것이고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서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도 생각되지만 그건 각자의 취향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영어 문법 알아야만 영어 하는 거 아니잖아요! 하지만 문법을 알아야 어설픈 영어(Broken English)를 줄이면서 어색하지 않고 좀 더 정확하고 부드러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Charles Louis Hanon


    테크닉에 대해서 체르니-하논과 달리 정 반대의 철학을 얘기하는 음악가들도 많다. 연습 교재 이름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오랜 시간 동안 기계적인 연습을 하는 것보다 우선 음악을 이해하고 소리를 정확히 듣고, 구체적으로는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내고 이해한 후 악기 앞에 앉기를 권하고 있다. 그래서 초보자는 갑자기 슈만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여하튼 체르니, 하논 그 둘은 음악을 가르치기 위한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드는데 헌신한 위대한 음악가였고 지금의 부모님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만의 교육철학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체계적인 교재가 없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사랑받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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