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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ug 08. 2022

말랑말랑 손가락 탄력성

어디에 쓸지 몰라, 일단 해 두는 거야. 정말 중요하거든.

    대학 신입생 시절. 공부가 나를 잠시 놓아주었고 학업에 애정을 쏟아붙지 않아도 다 용서해 줄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음악 활동에 잠시 몸을 맡겼었다. 진심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시절이라서 영혼은 어디 두었는지 잘 몰랐기에 몸을 맡겼다고 얘기하길 좋아한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던 때, 악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 모양을 보면 참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증이 있어 안절부절못하거나 잠시 집에 정신을 모셔두고 온 사람들처럼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게 보였다. 드러머를 꿈꾸던 친구는 어딘가에 앉기만 하면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렸고 두 발은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덜덜 대곤 했다. "혹시 정신병이 있으세요?" 음악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은 드럼 치는 사람의 두 발이 얼마나 바쁜지 잘 모를테니 격렬하게 떨어대는 두 다리를 이상하게 보는 건 당연했다. 그게 더블 베이스 8분의 7박자 연습한다며 오른발 8번 두드리면서 왼발 7번 맞춰주는 연습이라는 걸 나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8분의 7박자를 치던 그 친구는 지하철에서든 수업할 때든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어느 정도의 리듬감이 없으면 쉬이 익혀질 페이스도 아니었다. 두 손과 두 발이 따로 놀아야 한다는 건 손가락독립 운동보다 더 가혹한 훈련임에 틀림없다. 연습에 힘들어하다 보면 왜 인간은 손이 두 개, 발이 두 개 밖에 없었는지 아쉬워할 정도였으니까. 허공질 연습은 뭔가 많이 속 빈 강정처럼 보이고 스틱으로 타이어 두들기는 찰진 소리는 둔탁하기는 해도 귀기울여 듣고 있자면 그 리듬감에 감탄하곤 했다. 짱이였다!


    드럼에 비하면 기타나 베이스는 양반이었다. 생긴 거라도 좀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두 손가락으로 달리기를 하는 동작이나 피크를 쥐고 위아래로 긁어대는 자세만으로 아, 기타 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는 상식선에서 알아줬던 듯하다. 기타가 없어도 상상 연습에 몰두하면 그 눈빛은 정신줄 놓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행히 피아노 손가락 연습은 드러머 친구처럼 두 다리를 떨면서 복 나간다는 잔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업무 회의 중에도 손가락 연습이 무심결에 나온다. 왜 저러지? 이미 주변에 눈치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눈에 들어오면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손가락 연습은 손가락 힘 기르는 연습이 아니라 손가락 독립을 위한 운동이다. 한때 피아노 그립이라는 손가락 운동기구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길러진 손가락 자체의 힘은 경험적으로 피아노 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다. 손가락 마디의 힘은 길러지겠으나 그 부분의 근력이 피아노 치는데 어디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름이 왜 피아노 그립인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피아노 연습자에게 필요한 건 손가락 독립이다. 절대적이다. 옆 손가락이 움직이더라도 다른 손가락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 손가락 독립인데 그건 손가락 힘이 아닌 손가락부터 팔꿈치 사이의 근육 강화가 필요한 거다. 찾아보니 손가락 폄근, 얕은 손가락 굽힘근 등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의 근육은 하논이나 속도가 빠른 곡들을 십수 분만 쳐도 금세 피로가 쌓이고 통증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통증은 근육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자세가 좋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피아노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십 수분은커녕 트릴 이십여 초만 해도 그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여러 근육 중에서 콕 찍어서 어디가 부실한 지 금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는 힘을 빼라고 하는데 사실 힘을 빼는 건 힘이 들어가면 즉,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질 능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힘이 들어가야 힘이 빠진다는 이게 말인지 당나귀인지 모를 오묘한 가르침이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손가락 독립 연습은 근육 훈련 인지도 아닌지 쥐도 새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연습할 수 있다. 가볍게 책상 위에 피아노 치는 자세로 손가락을 올려놓고 다른 손가락은 책상에 붙인 채로 2번, 3번, 4번, 5번 손가락을 차례로 들어준다. 대부분 연습은 잘 안 되는 4번 손가락에 집중된다. 3번 4번, 4번 5번 트릴 연습도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손가락들은 바닥에 붙인 채로 해야 한다. 이름은 트릴이라고 부를 뿐, 속도는 커녕 움직이는 손가락마다 책상을 때리는 힘이 서로 다르고 약지 손가락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려고 하니 가지런히 붙잡고 있는 것도 버겁다. 독립 연습에 의미를 두고 근육이 살짝 당길 정도로 버텨보기도 한다. 같은 동작을 건반 위에서 5분 정도 하고 나면 근육에 정신이 번쩍 들고 살짝 팽팽해진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제 연습을 시작하면 하면 손이 조금 가벼워짐을 느낀다.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흥이 나서 뛰어다닐 준비가 되었다.


사진: DREAM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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