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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May 04. 2022

당신의 청각능력


듣기 좋은 소리와 듣기 이상하거나 거북한 소리를 구분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단 하나의 음만 틀려도 대번에 알아차릴 테니까. 심지어 갓난아기도 불협화음이나 불안정한 선율에 짜증을 내거나 울음을 터트리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에는 새근새근 잠이 들기도 합니다.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만 갖춰지는 기술이 아니라 위험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부분이라는 의미다. 피타고라스는 그 점에 착안하여 수학적으로 듣기 좋은 소리의 진동수를 찾아내었고, 바흐가 체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Chopin Nocturne 15번 (Op55-1)을 초견하는 도중에 어색한 음 하나가 들린다. 초견 실력이 부족해 더듬더듬 눌러야 했기에 연속된 음에서 오는 선율은 간파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악보에 표기된 음은 아무래도 그 음정이 이상했다. 경험상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악보 5건 중 1건 정도에서 잘 못 표기된 음을 발견하는데, 전후 패턴을 보더라도 아무래도 [라 flat]이 나와야 할 위치니 역시나 악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의심 없이 내 입맛에 맞는 위치로 연습을 해 나가다가 아차 혹시나 싶었기에 곧장 IMSLP를 뒤져본다. 


IMSLP에서 다운로드한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선명하지 못하게 휘갈겨진 악보는 PDF 파일을 넘길 때도 행여나 찢어질까 봐 조심스럽게 클릭한다. 어느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본 하얀 장갑을 끼고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넘기던 연구자처럼 고문서처럼 다루고 싶었나 보다. 여하튼 박물관 유물 냄새가 나는 파일부터 인쇄의 힘을 빌린 하얀 악보까지 몇 종을 확인해 보고 마지막으로 악보 출판사에서 공개된 악보 미리 보기를 통해 마지막 확인사살을 가한다. 나는 왜 처음부터 왜 출판사 사이트로 직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경멸의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레 flat]이 맞으니 내가 다운로드한 악보가 틀렸다. 있어야 할 제자리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마도 옥타브 표기 (8va~~~) 위치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어서 옥타브가 다르더라도 한 마디 안에서 동일한 음은 동일한 임시표 적용을 받는 것인지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여기저기 찾아보고 같은 음이지만 옥타브가 다르기에 임시표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악보의 오류를 찾아내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지만 단 하나의 음이 달라도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감각, 그리고 화음의 힘이라는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아마도 애당초 조성을 무시하고 수많은 음들을 비빔밥처럼 섞어 놓았다면 오류를 찾아내지 못했겠지만 12 음계를 바탕으로 작곡된 음악은 이미 예측할 수 있는 범위로 좁혀놓은 소리들이다. 그래서 그 범위를 벗어난 음정들은 밥을 먹다가 혀 끝으로 느끼는 작은 이물질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콘택트에서 천문학자 조디 포스터는 외계의 신호를 찾기 위해 하늘을 보는 것도 아니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는 것도 아니라 감청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고 무언가를 듣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천문학계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연구자들이 있다. 눈보다 훨씬 예민한 귀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신호들을 그래프로 변환하여 눈으로 보여주고 차이점을 찾아내기보다 오히려 소리로 변환하여 소리의 높낮이, 간격, 지속성 등의 변화를 들어냄으로써 더 많은 데이터에서 더 빨리 분석해 내는데 활용되고 있다. 그런 건 인공지능이 다 찾아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우리는 종종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당신이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질문으로 갈겨쓴 글씨를 읽어낸다거나 자동차가 있는 그림을 찾아내는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만큼 완벽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그런 대단한 귀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작곡이라는 것그 대단한 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선 아무 음이나 느낌대로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위치에 한 음 한 음 넣어야 하는 치밀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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