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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l 23. 2022

보이지 않는 고릴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인간의 편향성,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1999)


    심리학계의 굉장히 유명한 실험을 하나 소개해 본다.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자인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는 인지심리학을 대중에게 알리고 지금까지도 이 분야의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는 유명한 실험을 설계한다. 바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고 불리는 실험이다. 실험은 이렇습니다. 6명의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한 팀에는 흰색 셔츠를, 다른 팀에는 검은색 셔츠를 입힌 후 간단히 서로 농구공을 패스하게 하는 게임을 시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동영상으로 1분 정도 촬영하였고 다시 촬영된 영상으로 실험을 진행합니다. 피실험자에게 흰색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상이 끝난 후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혹시 영상 중에 특이한 것을 보았는지요?" 사실 실험의 목적은 1분 영상 중에 약 9초 정도 나오는 검은색 고릴라를 보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검은색 복장을 한 고릴라는 패스게임을 하는 학생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갈 뿐만 아니라 나를 좀 봐달라는 듯 가슴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고릴라를 본 학생들의 비율은 채 50%를 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도대체 내가 그걸 왜 못 본거지?" 피실험자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은 흰색팀의 패스에 집중하라는 지시에 따라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에 집중하여 다른 주변 환경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진 결과입니다. 즉, 보려고 한 것만 보았고 눈으로 보고 있다고 하여 다 보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고릴라를 찾아보라고 하면 고릴라 발톱만 나와도 찾을 수 있겠지요?
 
 이렇게 특정 부분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사물이 나타났는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심리현상이라 한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2011, 대니얼 사이먼스)
 

    야생의 동물은 딱 두 가지를 보려고 한다. 바로 나를 잡아먹는 포식자와 내가 먹을 수 있는 식량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기본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 주위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키워왔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는데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을 키워왔다는 의미이다. 그런 와중에 인간은 조금 다르게 특화하여 진화해 왔다. 특히나 우리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하고 당장 먹고살기 위한 문제에서 벗어나면서 일상생활 중 벌어지는 많은 일 중 관심 있어하는 부분이 저마다 달라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포식자와 식량이 아닌 다른 곳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인데 그렇게 발달된 주의력은 사람마다 독특하게 적응되어 갔다. 앞서 얘기한 특정 감각에 대한 과민도 그런 진화의 한 선택으로 보인다. 길을 걸어가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데 시간이 지난 후 저마다 가지고 있는 기억은 서로 다르다. 누군가는 음악을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음악이 있었다고만 기억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클래식 음악이었고 누구의 작품이었고 어떤 악기 소리가 흘러나왔는지와 심지어 그때 날씨가 어떠했는지까지도 기억한다. 자기가 집중하는 영역에 들어온 선택 기억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는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면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공리도 작동된다. 우리가 주의를 집중한다는 의미는 앞서 얘기했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찾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에 대한 실험 결과는 '그냥' 들어서는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매우 제한적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니 내가 연습하는 작품을 따라 하기 위해서라면 듣기에도 특정 목적의식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는 과학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빠르기를 중점으로 들어본다. 빠르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때론 어느 부분에서 여유롭게 변하는지를 감지한다. 영어 공부 리스닝 테스트 공부하 듯 반복해서 듣고 있으니 '들어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크레셴도와 데크레센도 표식이 있다 하여 모두 같은 높낮이도 아니고 악센트의 강약, 피아노, 피아니시모, 포르테 등 셈여림도 같은 작품 안에서 혹은 피아니스트 마다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차이를 느껴본다. 왼손 반주에 집중해서 듣기도 하고 오른손 선율에만 집중해 보기도 한다.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페달링에 대해서도 귀를 쫑긋하며 추적해 본다. 특정 음이 울리다가 끊어지는 지점이 있다면 분명 페달이 가해진 부분이고 레가토와 페달링을 구분하는 건 워낙 미세하니 가장 난도가 높은 리스닝 연습인 듯 한데, 불가능할 듯 싶다. 다만 나의 리스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게 너무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이든 여러 가지가 아닌 한 번에 하나씩,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들으면 고릴라도 찾을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음에는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과학이고 우리는 과학적인 훈련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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