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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ug 02. 2022

아침형 인간

습관을 들이는데 필요한 시간 >>> 포기하는데 필요한 시간

    습관을 바꾸려고 하거나, 뭔가를 다짐하고 움직이던 패턴을 바꿔 새로운 습관을 하나 갖는데 60일이 필요하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2개월이다. 2개월 정도가 되어야 이전에 하던 데로 다시 돌아갔을 때 뭔가 어색함과 허전함,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그동안 하던 데로 주욱 하게 되니 비로소 생활 패턴이 바뀌고 습관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던 길을 계속 가야만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다만, 그게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는 가릴 수 없을 듯하다. 대부분 나쁜 습관이 훨씬 더 빨리 익혀질 것 같아 보이는데 우리의 인생 앨범을 뒤적여보면 부모님이 원하는 반대방향으로 훨씬 더 잘 길들여져 있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있는 그대로 하고, 마음이 가는 데로 하고, 고민 없이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게 훨씬 쉽고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건 노력이라는 게 필요하니 가만히 있으면 나쁜 습관이 되기 쉽고 수고를 들여 바꾸려는 쪽이 대부분 좋고 건강한 습관인 것임은 분명하다. 그게 2개월이다.


    굳이 2개월이라는 실험 결과를 깨뜨리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다. 운전면허 시험을 합격하고 도로 주행을 나가던 날 옆자리 강사님은 운전대는 두 손으로 똑바로 잡으세요라고 버럭 했던 생생한 목소리 덕분에 지금도 항상 두 손으로 핸들을 잡는 좋은 습관을 단 하루 만에 만들어 주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2개월을 해도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있다. 나도 한 때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습관 길들이기 노력을 꽤나 오랫동안 한 적이 있다. 당시 아침형 인간에 대한 애찬론을 설파했던 베스트셀러도 있었는데 아침형이 아닌 사람은 책이 담고자 했던 메시지와는 정 반대로 '인간도 아닌' 게으른 사람, 성공은 항상 남 얘기일 뿐이고 건강도 보나 마나 엉망인 그런 저런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그렸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아침잠이 유난히 많았던 나는 부지런함에 대한 상징적인 모델로 아침형 인간을 아주 호의적으로 생각했었다. 대학시절에도 그랬고 직장인 신입시절에도 다시 한번 그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두 어 차례 더 시도해 보았다. 그렇게 몇 차례 시도했다는 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한 하루가 주는 상쾌함, 여유로움, 나만의 시간을 갖는데서 오는 자존감. 그리고 그 시간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더 했다면 그건 보너스였다. 그렇게 여러 장점을 몸소 느끼고서도 어쩌다 하루 늦어지는 날, 대부분 술이 문제였다, 2달을 훌쩍 넘겨 이미 몸에 각인되었다고 철떡 같이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원복 되어 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되돌아왔음에도 마치 지금까지 주욱 그래 왔던 것처럼 불편함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편안함마저 느낄 때면 내가 나에게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시도했다는 흔적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 이후로는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는 목표는 접고 여지껏 다시 생각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합리화한다고 하였다. 좋은 약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너무 쓰고 내가 못 먹겠다면 그만 아니겠는가 싶어서 그냥 몸에 익은데로 올빼미형 인간으로 이번 생은 마무리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 조차도 가물가물 잊혀지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중국에 장기간 출장을 다녀오고 나면서부터 고작 1시간의 시차가 몸에 익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정확히 일어나 눈을 뜨고 그 알람이 울리는 걸 지켜보는 날이 하루 이틀, 일주일 그렇게 주욱 이어졌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이 들면 잠이 없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조금은 씁쓸해하기도 했다. 습관이라고 의식하지도 않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노력 없이도 그토록 갈망했던 나의 습관이 완성된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다만 아침에 눈을 일찍 떴다고 하여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어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직 어두운 천정, 여름에는 이미 햇빛이 드이기 시작한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휴대폰을 주섬주섬 들여다보다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피아노를 한 번 굴려보기도 한다. 오늘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 일찍 일어난 벌레가 일찍 잡아 먹히는 법이고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자 따위의 결정도 한다. 출근도 안 했는데 퇴근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해진다. 얘기하고 보니 나름 아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그 시간에 하루 모습을 그려보았고, 생활의 효율을 생각해 보았고, 꼭 해야 할 일을 정했으니까.


가만있자,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중국에서 적응된 1시간 시차 때문에 일찍 일어난다고?  이상한 점을 알아채는데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 시간이 느리다! 시차대로라면 난 1시간 늦게 일어났어야 했다. 누가 나에게 사기 친 건가요?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를 한 사발 들이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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