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비창 2악장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by KayYu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Pathetique', op. 13 - II. Adagio cantabile


요즘 나에게 소리에 반응하는 감각이 하나 더 생긴 듯하다. 설마 원래부터 귀가 하나 더 있었던 건가? 거울을 돌려보며 여기저기 찾아봐도 없다. 자네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찾고 있는 내가 한심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감각이 하나 더 생긴 건 같다고 누군가를 붙잡고 얘기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니 눈도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귀도 덩달아 따라가는 것 아닌지 걱정스러운 상황이라 분명 막힌 귓구멍이 갑자기 뚫린 게 아니라면 이 감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바벨을 열심히 들면 근육이 생기듯이 적당히 쉽고, 적당히 어려운 연습곡을 찾고자 마음을 열어두니 들리기 시작한다고 믿고 있다. 먹거리를 찾아 정확하게 혓바닥을 뿜어내는 개구리처럼 타깃을 찾으려고 그쪽 감각이 진화했다고 하자.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 중에 하나인 비창(悲愴)이다. 비창에 대한 추억도 있다. 비창이라는 곡은 한 동안 잊고 있었던 클래식을 다시 찾아보게 만든 곡이기에 더욱 더 애정이 묻어 있다. 정확히는 비창 3악장, 더 정확히는 펌프(PUMP)에 삽입된 베토벤 바이러스 덕분이다. 이럴 땐 뿌리를 찾아봐야 한다. 뿌리, 원곡, 본질, 실체, 진심... 이런 게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댄스 오락의 목적에 맞춰 개성 있게 편곡된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신나게 해 주지만 원곡을 찾아 들어주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런 덕분에 아마도 베토벤 소나타 중 전체를 다 들어본 첫 곡이 되었던 것 같다.


베토벤은 총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였고 그중 손꼽는 3대 피아노 소나타라고 하면 No.8 Pathetique(비창), No.14 Moonlight(월광), No.23 Appasionate(열정)를 가리킨다. 그런 명성이 있어서인지 어느 하나를 들어도 중간에 쉽게 끊기 어려운 흡입력이 있다. 반대로 그런 대중성이 있었기에 3대 소나타로 손꼽혔을 것이다.


그중 2악장은 Adagio Catabille로 시작한다. Catabille, 노래하듯이, 비창(悲愴, Sorrow). 이 언밸런스는 무엇인가? 곡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조금 어두운 면이 있고, 1악장도 도입부만 불길하게 시작할 뿐, 중반 이후부터 달리기 시작하면 머리를 흔들고 싶을 만큼 쾌차하기도 하다. 그렇다 치고, 논란의 2악장은 오히려 물결처럼 부드럽기까지 하다. 콧노래로 진중하게 흥얼거리고 싶은 선율이다. 3악장은 펌프의 편곡 버전이 각인되어 있어 화끈하게 신난다.


그런데, 아무리 요리 들어도, 저리 들어도 슬픈 느낌이 없다. 슬픔을 강요받을 수는 없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나 감정이 메마른 사이코가 된 거야? Catabille와 Pathetique의 간격의 모호함에서 시작하여 Pathetique의 의미를 찾아보면 '슬픈 노래'이라고 하기보다는 온라인 프랑스어 사전은 비장함에 가깝다고 설명되어 있다. 다시 Cambridge French - English Dictionary을 찾아보니 간단하게 한 줄 'A pathetic situation'으로 설명되어 있다. 의미를 그대로 풀자면 '괴로움을 떠올리는 애처로움과 감정적인 동요 상태' 정도로 이해된다. 다행히 그동안 헛 다리 짚고 잘못 들은 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본디 작품의 타이틀이 'Grande Sonate Pathetique'인데 베토벤이 직접 붙였다거나, 베토벤이 붙였다고 '믿는다'거나, 출판사가 베토벤의 첫 히트곡에 부랴부랴 이름을 붙였다거나, 베토벤이 붙였는데 당시의 Pathetique의 의미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슬픔이 아닌 동정의 감정이다는 언어 역사학적 조언, 누가 붙였느냐를 떠나서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넘나들면서 잘못된 번역을 또다시 잘못 이해하는 오역의 결과 등.


종합해 보면 진실은 베토벤 밖에 모른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걸 들었던 출판업자가 그렇게 느꼈을지언정 베토벤이 슬프고 우울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벤은 이 아름다운 비창 2악장을 귀가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작곡하였다고 한다. 청력을 잃어가는 음악가라는 비극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고 그 본인의 고통은 더 했을 법도 하지만 그가 적어 내려간 선율은 그가 그런 고통에 있었다는 걸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혹, 출판업자가 베토벤의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그 불굴의 의지의 아이러니를 슬프다고 생각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슬픈 노래 비창은 너무 멀리 나간 듯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용어는 정말 많다. 이건 음악 기호가 아니니 국어사전에 있는 형용사를 다 끌어와도 무방할 것이다. 피아노 곡을 듣고 어떤 감정표현인지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할 듯 하지만 반대로 어떤 감정표현 없이 연주를 하는 것도 불가능할 듯싶다. 생각하지 말고 연주하라는 것과 같으니까. 생각하지 말아야 하지 라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까. Catabelle를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노래를 부를 때 끊김이 없듯 전체적으로 레가토 및 적절한 페달 사용으로 물 위를 둥둥 떠가듯, 입에서 허밍 하듯, 굴드의 허밍이 피아노 음보다 더 아름답게 들린다면 그게 진정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게 아닐까라는 나만의 해석이다.


작품명은 곡의 분위기에 대단한 후광효과를 만들어낸다. 비창 덕분에 작품명에 대해 항상 의심을 하고 그 기원을 찾아보게 되고 작곡가 본인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많은 작품명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못 인식하고 있는 작품은 그걸 벗겨내고 들으려 해도 잘 되지 않고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의 순수한 감상에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음악이 행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이름만으로 슬픈 감정을 억지로 불러들이며 감상하지 않기를 바람이다. 아직 베토벤의 소나타 32곡 중 닉네임이 있는 곡은 10여 곡 남짓하다. 닉네임이 있는 건 인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닉네임이 없으니 사람들이 발길이 더 멀어진 것도 사실일 듯하다. 독창적인 어느 큐레이터에 의해 나머지 소나타들도 빛을 발해 보길 기대한다. 스타는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2악장은 총 73마디로 구성된 론도 형식이다. A-B-A'-C-A. 일단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차근차근 연습해 나가는 데는 무난했다.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42~43마디 부분의 왼손 화음이다. 화음 기초가 없기에 처음에는 매번 짚어야 할 위치를 세어보곤 했지만 해당 마디 왼손만 30분 정도 반복하여 위치를 기억시켰다. 속도를 올리는 건 한계가 있지만 화음은 공을 들이면 가능한 부분이다. 이렇게 왼손을 먼저 익히고 그리고 오른손을 연결해본다. 서 너 개의 손가락을 동시에 눌러야 하고 동일하게 반복되는 화음들은 손가락과 근육의 피로를 느끼게 한다. 필요한 근육의 힘이 약하고 아직 손가락의 위치가 익숙하지 않다는 걸 얘기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하논의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음 외에 두 번째로 어려운 부분을 꼽으라면 셈여림이다. 베토벤 곡에는 특유의 강한 충격과 여린 터치의 조합이 많다. sF, Fp, p, pp. 강렬하게 울릴 곳에서는 울려주고, 여리고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야 할 부분의 표현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주할 때의 감정에 따라 음의 높낮이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기호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니 어느 악상기호 하나도 허투루 보고 넘겨서는 안 된다. 설사 그 표현이 서툴러 미숙하게 처리하더라도 기호가 여기 있다는 신호는 분명히 넣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참. 베토벤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변천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가 작곡했던 소나타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면서 피아노의 기계적 발전도 전기 중기 후기를 거치는 과정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창을 작곡한 시점에 사용했던 피아노에는 페달이 없었다. 페달은 이후 등장하였고 후기 소나타부터 적용되었다고 한다. 악보에도 페달 기호가 없으니 이를 꼭 레가토로 연주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원칙론자들은 논쟁하기 좋은 소재이겠지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적절하게 페달을 사용하는 건 꼭 필요해 보인다.


Pathetique, 2 악장, Adagio catabile, 도입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피아니스트 임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