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라 느낄 때는 동전 던지기를 추천한다. 단, 그게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 경우라면. 결정장애는 시간이 있을 때나 생기는 한가함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 생각해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려면 그렇게 급박하지 않은 이유와 그렇게 당장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넘겨도 될 이유가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요하다면 스스로 마감날을 정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아무래도 동전 던지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결정장애도 긍정적으로 보자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서 판단한다고 옹호해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결정장애 의미는 장애라는 말을 붙인 의도에서부터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장애가 부정적이라는 표현에 불편해하실 수있겠지만 관용어처럼 굳어버린 용어이다보니 양해를 구해봅니다) 빨리, 제시간에, 결정이 늦어 손실이 발생되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각각의 장점을 꿰뚫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게 좋은 건지 저게 좋은 건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이런 선택의 기준이 되는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설령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다고 하면 이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를 모른다. 게다가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서도 또다시 그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다. 궁극의 결정 장애는 바로 이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사려 하는 물건에 대해서 몰라서 결정을 못 하고, 내가 무엇을 더 중요시하는지를 몰라서 결정을 못 한다. 이래저래 안팎으로 나는 아는 게 없다.
결정장애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진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설령 어느 결정을 하든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쪽과의 비교는 결국 불가하다는 사실이다. 비교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희망사항일 뿐 내가 두 가지를 모두 선택해서 직접 비교하지 않는 이상 실증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는 없다. 둘 다 선택하거나 동전을 던져 둘 중 아무거나 선택하거나 차이가 없는 상황이 아니겠는가?어느 하나를 선택하였다면 나는 선택한 그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뒤돌아 본다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닐까. 물론 좀 더 시간이 지나 이전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그것을 다시 마주하고 경험할 기회가 생겨 비로소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상태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자. 비교 결과 어느 쪽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여도 그 결과를 놓고 과거의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나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결코 잘못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인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차라리 마감날이 단 하루 이틀밖에 없어서 생각할 여유조차도 없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무지한 상태에서 그냥 내가 고른 게 좋은 줄로 믿고 그냥 가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좋아서 결정하기보다 결정해 놓고 좋아질 때까지 관심을 집중하면 된다는 게 나의 마인드다. 그래서 나는 결정장애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그 분야에 좀 안다는 주변 사람을 먼저 찾고 (누구에게 가야 할지를 결정할 일은 없었다 ^^) 그리고 10분 조언을 듣고 결정짓고는 했다. 전에 쓰던 접이식 다리에 올려 쓰던 스테이지형 건반 대신 디지털 피아노를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글을 뒤적이면 "결정장애예요.. 도와주세요" 제목 글이 이 삼일에 걸쳐 한 건씩 올라온다. 무턱대고 얼마짜리 골라주세요라는 무성의한 글도 있지만 심한 경우,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기능들을 찾아 공부하면서 눈높이만 높아진 분석 글도 보인다. 조언을 구한다면서 자신의 결정에 반하는 의견이 올라오면 열심히 반박하면서 합리화하는 노력을 보이는 아이러니한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조언을 왜 구하는 거야?
딱 한 달을 스스로 마감날로 정했고, 계약서 사인을 하고 왔다. 내 생일선물은 그렇게 선택하는 거다.
관심사는 결정장애를 해결한다. 간장과 액젓 하나씩 사 오라는데 딱 이거라고 골라주지 않으면 난 고를 수가 없다. 하지만 맥주를 고르는 데는 1초도 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