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Yu Jul 31. 2022

같은 음악, 새로운 해석

압도하는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인가 마음으로 듣는 것인가?

    청중을 압도하는 표현력을 발산하는 피아노 소리가 있을까? 같은 작품도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공연장에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때로는 울창한 숲, 향기 그윽한 만개한 꽃밭펼쳐질 수 있을까? 연주자의 파워풀한 터치와 무의식적으로 뿜어 나오는 동작에 전율을 느끼기도 하지만 바다와 숲과 꽃밭까지 보이지 않는 건 내가 부족한 탓일까? 떠오르는 심상이 비슷하고 몇 가지 이미지로 한정적인 건 나의 내면에는 새파란 하늘과 닿은 지평선 바닷 물살보다는 새벽 아침 안개길과 잔잔한 달빛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누구나 존중해 줘야 하고 존중받아야 할 취향이라는 게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좋아하는 계절이 당신과 내가 다르고 색깔, 맛, 냄새 등 기호도 다르다. 그래서 심상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 잘 못 일리는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건 보여주거나 말할 수도 없는 법이니 무슨 곡을 들어도 떠오르는 심상이 달 빛 아래 아늑한 밤공기처럼 특정 분위기로만 맞춰진다면 좀 더 시야와 귀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지배하고 있는 그의 정서와 궁합이 맞는 작품이라면 분명 더 잘 연주할 수 있을 텐데, 달 빛 아래 아늑한 밤공기 분위기의 연주만 하기에는 세상에 너무 많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니까.


    이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누구의 연주다. 앗! 이 소리는 분명 누구의 피아노다. 누구를 흉내 내고 있구나. 이건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진짜 자기의 소리구나!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을 정주행하고나서 이런 감탄사들이 영화에서나 가능한지 실제로도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시야를 넓히지 못하면 어쩌면 들을 수 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시야가 좁으면 그게 표현력에서도 드러나지 않을까? 한 곡을 마스터한다 할 때 완성의 끝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꿔 말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수준의 연주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듣고 있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1810년에 작곡되었고 1811년에 초연되었다. 베토벤 자신을 비롯하여 그 사후 얼마나 무수히 많은 기성 연주자들과 피어나는 새로운 기대주들이 220년 된 이 곡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겠는가? 과거 연주자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다시 녹음해야만 할 일이 있는 건 절대 아닐진대 그 이상의 가치를 찾아 같은 악보를 펼쳐놓는다. 가치는 발견되는 게 아니라 개발된다. 숨어있던 가치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평론가들은 '새로운 해석'이라는 단어를 종종 빌려서 가치를 논한다. 


    독창적인 표현력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해석. 연주를 하는 데 있어 악보는 죄가 없다. 220년 전 악보 그대로다. 음표 위치도 그대로요 셈여림, 템포 모두 그대로다. 사실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서 손상된 악보도 있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오로지 연주자 자신뿐이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기능이 좀 더 세련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작은 변화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연주자가 지니는 감성, 조금 넓혀 연주자성향이 악보를 달리 읽어내고 달리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해석'일 것이다.


    연주자의 감성, 향, 경험, 노련미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젊은 시절과 노년기의 연주 스타일도 달라질 것이다. 비창 2악장처럼 느린 곡을 연주할  표현을 더 깊고 진중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나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완성하였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수학 문제 풀 듯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 그렇다면 나도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이라고 정의하고 스스로 페이지를 넘겨도 될까? 하지만 분명히도 내가 벽에 먹칠로 큰 획을 그어 놓은 것과 뱅크시가 먹칠로 큰 획을 그어 놓은 것에는 차이가 있다. 내가 찍힌 CCTV는 증거물이 되어 벌금과 함께 현장 복구비용을 지불해야겠지만 뱅크시의 붓질 한 번으로 그 담벼락을 소유한 집값은 두 배가 될 것이니까. 새로운 해석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능이 갖춰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표지. 피아노의 숲 포스터

매거진의 이전글 디지털 터치감 – 이스케이프먼트와 음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