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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l 25. 2022

디지털 터치감 – 이스케이프먼트와 음색

디지털 피아노를 고르는 최소한의 기준

    디지털과 반대되는 아날로그가 있고, 아날로그 피아노를 가리키는 업라이트,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디지털피아노와 그랜드 피아노의 감성 차이는 그래드의 자존심이 비교 자체를 허락하지 않고 예의가 아니라는듯 불쾌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취향 차이라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으니 순전히 내 취향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다. 내 성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인데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느낌 차이를 설명하려 들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강아지 인형을 만지는 것과 꼬리 격렬하게 흔들고 촐랑거리며 따라오는 진짜 강아지를 안아 올리는 느낌의 차이. 이것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손 끝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각은 이렇게 소름 끼칠 만큼 미세한 차이를 느낀다. 그건 소리를 듣는 귀도 마찬가지이다. 소리의 속도가 340m/s인데 왼쪽 귀와 오른쪽 귀의 거리 25cm 차이에 받아들이는 0.00005초의 차이를 감지하고 어느 쪽에서 오는 소리인지를 감별해 낸다. 그런 초고성능 두 센서가 결합하여 터치감의 성이 완성된다. 아날로그의 터치감이 도대체 왜 중요한지는 역으로 디지털에서 그걸 똑같이 구현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하는지로 대략 설명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스케이프먼트 기능 같은 것들이다.


    피아노 이스케이프먼트(Escapement) 액션.  피아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건반 터치감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고 있고, 알아야 할 아날로그 피아노의 공학 기술이다. 건반을 치고 빠질 때 터치감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라고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해머(Hammer)가 현(String)을 때리고 되돌아오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가락은 건반을 누르고 건반 끝에 연결된 해머가 현을 때리는 순간, 해머를 밀어 올리던 잭(Jack)이 이탈(Escape)하면서 해머와 현을 분리시켜 현이 계속 진동할 수 있도록 하여 소리를 울리도록 해 주는 원리이다. 심벌을 스틱으로 치고 손으로 잡으면 소리가 멈추듯 해머가 현을 때리고 되돌아오지 않고 접촉되어 있으면 당연히 현이 더 이상 진동하지 않기에 소리는 침묵하게 된다. 이를 해결한 기술이 이스케이프먼트(Escapement)이다. 17세기 말 피아노가 처음 개발된 시점부터 있었던 기능이며 없어서는 안 되는 기능이기에 피아노의 개발은 이스케이프먼드 메커니즘 개발과 그 역사의 시작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지털피아노에서도 아날로그와 유사한 이스케이프먼트 터치감을 위해 제작사들만의 독창적 건반구조를 개발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노력을 지속하고있다.


    그런데 디지털피아노로 넘어오면서 의문점이 든다. 아날로그 피아노와 달리 건반을 누르고 센서가 감지되는 전자기기에서 이스케이프먼트 기능은 센서를 On/Off 만 하면 되는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스케이프먼트기능은 전자적 기능이 아닌 물리적 기능이기에 프로그램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 질문이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 디지털피아노에서도 가격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타건감이다. 궁극적으로 그랜드 피아노와 얼마나 유사한 느낌을 전달하느냐가 목표일 것입니다. 내부 구조의 관성력에 의한 미세한 진동. 당신은 느낄 수 있나요? 타건감을 좌우하는 데는 재질, 무게(Weighted), 균형추(Counter weight), 해머의 무게를 건반마다 달리한(Linear Graded Hammer)와 함께 이스케이프먼트 (Escapement or Let-off) 기능 여부 등이 있다. 이런 모든 기능들이 그랜드 피아노를 칠 때 느끼는 섬세한 감각을 살려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요소들 하나하나는 아날로그를 다뤄보지 않았다면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부분도 있지만 장시간 아날로그 피아노를 다뤘던 아마추어라면 쉽게, 분명히 구분해 낼 수 있는 차이일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다뤄본 사람들이 아닌데도 막상 지출을 할 때 하염없이 눈높이는 높아지고 그랜드 감성을 찾곤 한다는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 그랜드피아노와 구조를 똑같이 만들고 현만 없으면 완전 동일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가격이 일반 업라이트보다 높아진다면 경쟁력을 서서히 잃어갈 수 있으니 내구성도 고려한 구조를 갖추면서 터치감을 만들어내는게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일반적인 이스케이프먼트가 피아노 개발 초기부터 있었다면 더블 이스케이프먼트기능도 1800년대 추가 개발된 기능으로 건반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작 없이도 빠르게 반복(연타)이 가능하게 고안된 기능이다. 아래 건반 구조 그림에서 실처럼 엮여있는 모양의 스프링이 이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신시사이저나 소리가 나지 않는 미디 전용의 마스터 건반 등에서는 가격에 상관없이 일부러 이러한 기능을 넣지 않는 건반들도 종종 볼 수 있긴 하니 금액이 높은데 이스케이프먼트 기능이 없다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단지 서로 목적이 다른 악기를 얘기하고 있으니 잘못된 게 아니라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지요. 종합해 보면 이 기능이 없으면 디지털피아노로 연습하다가 아날로그를 다루게될 때 pp, p, f, ff 등의 셈여림 표현을 할 수 없고 연타도 하기 어려우니 손가락 연습만 하겠다는게 아니고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라도 반드시 필요한 기능임을 강조한다. 연습이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섬세한 피아노는 그걸 다뤄야하는 기술을 필요로하기에 피아노가 사람을 가르치게된다.


Grand Piano 구조 (출처: The Piano Deconstructed)



    디지털피아노의 또 다른 강점은 음색. 그 이름 그대로 색깔을 입힌 소리이다. 조성(Tonality)만이 밝고 어두운 감정을 표현하는 건 아니다. 일렉트릭의 힘을 빌어 소리에 오색찬란한 색상을 입혀 감정을 입혔다. 쇼팽의 녹턴 같은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는데 아무래도 밝은 톤으로 연주하기에는 맛깔이 나지 않는다. 반대로 야니의 웅장한 음악이나 죠지 원스턴의 여울물 같은 이미지에 중후한 맛깔의 그랜드 피아노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음을 느낀다. 물론 원곡의 기억이 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언플러그드 음악이 주는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곡을 단지 언플러그 악기로 연주한다 하여 완성되는 건 아닌듯하다. 언플러그드에 맞는 곡을 선정해서 약간의 편곡을 가미해야 언플러그드의 그 맛이 살아난다. 언플러그드의 음색이 있기에 원곡을 그대로 연주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정통 피아노를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가상악기는 천박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집안에 정통 피아노가 없는 나에게 최소한 하나의 음색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정통의 그랜드 피아노라 하더라도 스타인웨이나 야마하, 가와이의 음색은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곡에 어울리는 소리를 추구하는 애호가들의 청각은 그 끝이 없을 듯하다. 곡에 어울리는 최적의 음색을 찾는 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곡에 진심을 담고 어울리는 음색을 탐구하는 애정만큼은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진짜 피아노일까? 피아노를 작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작동 방법으로 정의한다면 그 답은 '아니다'이다. 그러나 피아노를 그 역할로 정의한다면 디지털 피아노는 그저 종류가 다른 피아노이다. 피아노를 위해 쓰인 그 어떤 음악이든 피아노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로 연주하게 해 주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앨던 스키너, 피아노의 역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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