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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l 26. 2022

Chopin Nocturne 13번 Op48-1

열정적이다. 포근하다. 평화롭다. 그래서 감사한다.

    장기간의 해외근무기간 외롭고 힘들 때 그저 위로를 얻고 싶을 때, 혹은 오늘 하루 있을 일에 대한 막연한 긴장으로부터 도망쳐 잠시라도 마음의 격리 장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스스로 갇혀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무던히도 이어폰을 끼고 첫 플레이를 눌렀던 곡이 있다. Chopin Nocturne 13번. Op48-1. 그렇게 출근길, 퇴근길 버스는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장소가 되어 주었다.


     녹턴 13번은 고요한 호수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듯한 깨움에서 시작한다. 고개를 들고 퍼져나가는 물방울의 여운을 바라볼 찰나에 두 번째 물방울이 떨어진다. 한동안 이어지는 평온함은  안의 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지만 그리 많은 시간을 주지는 않는다. 그 물결은 이내 호숫가로 뻗어나가고 주변 숲 속의 바람의 영혼을 불러들여 어느새 눈앞은 격정의 회오리가 불안감처럼 감싸 주변을 휘몰아친다. 긴장감 속에서 갑작스러운 혼란스러움에 마음은 심란해지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아이는 동공이 흔들리다가 눈물이 핑 돌 때 그걸 감추려고 그냥 주저앉아 얼굴을 파묻는다. 서서히 구름은 걷히는가 싶었지만 구름 위 햇빛과 서로 밀고 당기듯 쉽게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는다. 휘몰아치는 건반은 격렬한 투쟁 같기도 하고 뜨거운 정열 같기도 하다. 하지만 클라이맥스에 잿빛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은빛 햇살은 이내 구름과 안개를 밀어내고 따스한 햇살을 호수와 숲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 다시 평화로움으로 되돌아간다. 나의 가파 올랐던 호흡도 다시 편안해진다.


    녹턴 13번은 그렇게 평화로움에서 일상의 고민과 괴로움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다시 꿋꿋이 헤쳐 나와 다시 평화로움으로 되돌아오는 하루의 예행연습이 되어준다. 덕분에 소소한 자신감을 마음에 품는다. 음악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편안함을 준다는 일상적인 매력을 넘어서 '자신감'을 준다는 게 뚱딴지 소리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그랬다. 열정적이다. 포근하다. 평화롭다. 그래서 감사한다. 곡은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어 정복하고 싶고 그 욕심이 나를 더 발전시킬 것이라는 걸 안다. 자신감은 바로 여기서 오는 게 아닐까?



    음악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요소 중에 기술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기술을 갈고닦는 이유는 무결점에 가까운 연주를 하기 위해서이고 그를 통해서 예술의 무결함을 드러내려는 찬양 활동에 가깝다. 어쩐지 금속성의 차가울 것 같은 '기술'의 이미지는 무형의 재능, 특히 손끝 기술 앞에서 그 차가운 이미지가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경험한다. 결코 차가울 수 없는 강렬한 뜨거움이다. 그래서 경지에 오른 기술은 종종 예술과 구분할 수 없고 언어로 설명하기조차 버거운 '생각'을 오감으로 표현하는 재능의 역량 앞에 '이건 예술이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남들만큼 하는 정도의 괜찮은 기술만으로는 누군가를, 심지어 나조차도 사로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탁월한 기술은 두려움에 가까운 경이로움의 아우라를 발산시킨다. 머릿속의 이미지, 가슴속의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한데 여기서 기술은 단순 수단일 뿐이라 하겠지만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잘하든 탁월하든 어느 쪽이든 결코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술을 동원하여 표현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눈으로 혹은 귀로 혹은 여타 오감으로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심미안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어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머릿속으로 혹은 가슴속에서만 묻어 있는 잠든 예술인들이다.


오늘도 그 기술을 연마한다. 나를 보여주기 위해. 나조차도 몰랐을 수 있는 다른 나를 꺼내기 위해. 욕심은 뱃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복근은 드러내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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