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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un 04. 2022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듣다가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건 나의 경험뿐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다의 숨은 의미는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흠. 사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건 아니다. 외람된 얘기지만 우리는 미래에 벌어질 일 딱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처럼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확실한 건 오직 죽음뿐이다'라는 말에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일어날 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로또 번호를 공짜로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대로 하던 일을 계속하면 좋을지 아닐지 정도만이라도 알고 싶을 뿐이다. 나의 조상님들은 꿈속에서 로또 번호라며 65, 78 이런 숫자를 알려준다. 조상님들이 살던 시대 로또와 다를 수 있으니 이해는 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가늠할 수만 있다면 그 일에 기대감을 갖게 되고 그 기대감은 다시 희망으로 옮겨 붙게되면서 뒤돌아 보지 않고 달려가는 시간을 조금 더 흥미롭고 슬기롭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떠오른 물음이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이 모두 좋은 일만을 아닐 것이고, 좋지 않은 일 까지도 알게 된다는 건 그리 유쾌한 상상은 아닐 것이니 안다는 게 과연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는 싶다. 사람이니까.


날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일과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일, 이와 반대로 난생처음 해 보는 일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다르다. 그리고 그 일에서 습득하는 지식의 양과 처세의 방향 또한 완전히 다르다. 처음 접하는 일은 집중하며 노트에 꼬박꼬박 적으면서 들어도 이해가 안 될 수 있고, 애써 이해해도 내 것으로 소화되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다시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많은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일이라면 우연히 지나가며 스쳐 들어도 무슨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왜 그런 얘기가 나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그림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회사에서 업무처리의 노련미라는 건 산전수전 겪은 백전노장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있는 것이지 신입사원이 보여주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신입사원의 눈으로 볼 때 그 사람을 가리켜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송할 수 있겠지만 그건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구분할 수는 없기 때문일 뿐이다. 통찰력이든 직관력이든 추상적으로 설명되는 능력에서 타고난 천재성을 가진 사람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사실 구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 경험이라는 것은 몸으로 부딪히는 실전 경험도 있겠지만 책상 앞에 지그시 눌러앉아 머릿속을 꼭꼭 눌러 채우는 간접경험 즉, 지식도 포함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천재가 아닌 백전노장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작곡을 배워 본 적은 없지만 작곡가를 빙의해 본다. 피아노 곡 하나에서 두 세 페이지가 넘어가는데도 악보가 같은 조성을 유지하면 지루함이 느껴진다. 화려한 화음이더라도 계속 듣고 있으면 단조롭다는 느낌을 캐치한다. 또 다른 주제를 불러들이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조성을 바꾸어 본다. 주제와 주제 간 연결은 매끄러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복선이라도 깔아보려 다음 주제를 연상할 수 있는 힌트, 즉 모티브가 될 작은 악구 하나를 조명해 본다. 작곡이론에서는 히트곡들의 조성과 화성 흐름을 분석하고 공통점을 찾아 매뉴얼처럼 만들어보기를 시도하고 조금 응용하여 작곡 기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식차트의 기술적 분석 아무리 해 봐야 내일 장을 예측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내일 하루 정도는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명백한 거짓말이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억만장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보고 있을 리도 만무하니 따지고 들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히트곡의 화성 전개든 주식 시장이든 과거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안전한 방법이라고 믿는 방향을 선택함으로써 무작정 덤비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여러모로 안심 수단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건 매 한 가지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 힌트가 또 여기 있다. 설계자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미래는 예측하지 말고 만들어가라고도 했으니까.


어떤 음악이든, 처음 듣는 곡과 자주 들어 좋아하는 곡에 대한 몰입도는 크게 다르다. 셀 수 없이 많은 곡 들 중에서 나의 애청곡이 된 이유에는 개인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율이 마음을 울렸거나, 가사가 너무 좋았거나, 한번 듣고 전율을 느꼈던 신이 내린 목소리 등. 이도 저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곡이라면 더 이상의 이유도 필요 없을지 모르겠다. 딸내미가 듣는 일본 노래가 그런 경우이다. 일본어인데 가사를 알겠는가? 곡이 귀를 솔깃하게 하였고 마음을 빼앗았다면 그 곡을 다시 들을 때는 어떤 선율이, 어떤 가사로, 어떤 목소리와 함께 듣게 될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음악에 ‘기대감'이 더해지면서 더욱더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가사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춤을 따라 하게도 만든다. 가사를 알고 있어야 따라 부를 수 있고 멜로디와 박자를 알고 있어야 흥얼거릴 수 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내 몸과 마음이 동기화되는 순간 음악을 느끼며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들려오는 음악을 순수하게 한 음 한 음 소리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행지나 박물관에서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보고 들으며 해설과 함께 감상할 때 받는 즐거움보다는 다소 부족할 것이다. 바꿔 얘기하면, 우리가 미리 알고 있음으로써 즐거움은 극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듣고 있다. 모두 합치면 대략 러닝타임이 9시간 정도 걸리는데 점심, 저녁으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들으니 3일이 걸렸다. 베토벤 3대 소나타 월광, 비창, 열정 그리고 좀 더 추가하여 발트슈타인, 폭풍 정도가 추천되는 곡으로 올라온다. 이 즈음에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다. 베토벤 소나타 추천곡이라는 얘기를 자주 하면서 정작 32곡을 모두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남이 정해 놓은 추천곡에 묶여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베토벤 소나타에 닉네임이 붙은 곡은 대략 10곡이다. 이름이 없기 때문일까?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잡초일 뿐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기에 잡초라 칭할 수는 없지만 대중들에게 닉네임이 아닌 작품번호 몇 번으로 기억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나머지 곡들의 선율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변명해본다.


   작품명에 '소나타'라는 이름이 있다면 당연히 소나타 형식을 따른 곡이다. 이 말에는 조금 모순이 있긴 하다. 베토벤이 이 32곡을 통해 '소나타'라는 악식의 교과서를 제시하였다는 평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악식이 공존하였을 뿐이고 항상 음악이 먼저이지 악곡 형식이 먼저는 아니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하튼 그렇게 확고히 자리를 잡은 악곡 형식은 이후 작곡가들에게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안전한 방법을 선택지를 주었다는데 그 의미는 엄청나다.


소나타 곡이라면 거의 표준화된 악곡 구성인 1부 제시부, 2부 전개부, 3부 재현부를 떠올리게 된다. 많은 소나타 곡을 듣다 보면 각 부의 특징과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제시부에서 살짝 얼굴을 비친 주제가 확장되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찾을 수 있다면 듣는 재미는 물론이고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작곡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를 상상하면서 함께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 작품에서 복선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듯, 소나타라는 형식 속 선율에서 다음에 이어질 주제를 예측해 볼 수도 있다. 전개부의 종결에서 이제 재현부가 나올 것이라는 것과 어떤 선율이 변주되고 확장되어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악곡 구성을 모른다면 애당초 그 기대감은 일어나지 않았을 만큼 악곡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즐거움에 주는 영향은 강력했다.



베토벤 소나타를 감상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묘안을 집중해 본다. 결국 많은 경험뿐이고 그 영역도 지극히 한정된 영역일 뿐이지만, 그것조차도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얘기하면 잔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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