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글을 쓴다. 그동안 글을 왜 쓰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했을까? 글은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있는 얘기를 '저 여기 있어요~'라고 지금의 혹은 미래의 무량대수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리 속도 비어있고, 가슴속에 글을 쓰겠다는 열정도 식어 있었으니 쓰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쓴 게 맞는 것 같다.
세 달 전 즈음에 '더 늦기 전에 피아노'라는 책을 여기 브런치의 힘을 빌어 POD로 출판했다. 책을 출판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잊어버리기 위해서였다. 나의 생각을 책 속에 밀어넣고 덮어버리면 거짓말처럼 그 생각들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맺고 끊음을 주고 나면 강렬한 '비움'의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하드디스크였다면 포맷된 기분이 이런 것일 듯하고 포맷한다하여 무게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 가뿐함은 기분탓일 것이다. 이제포맷을 완료했으니 거기에 새롭게 다시 채울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생겨난 샘이다. 그렇게이제 막 머릿속의 벼를 수확했다. 지금은 그 위에 뿌려 놓은 다른 씨앗이 있으니 무럭무럭 자라나길 기다려본다. 피아노 앞에서.
참고로, 여기 있는 '더 늦기 전에 피아노' 브런치 글들을 모았으니 브런치만 대충 읽어도 13,500원을 아끼시는 겁니다. 물론 재미없는 글들을 읽는다는 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요.지금 읽고 있는 1,222페이지짜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만큼에 견줄 듯합니다. 읽고 싶은 책이라고 캡처해 둔 도서 목록에 십 수권이나 있음에도 굳이 1,222페이지짜리 앞에서 표류하면서도 인내심을 바닥부터 긁어올려 읽고 있는 건 내가 611페이지를 넘긴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그래도 50페이지마다 한 번씩 나오는 피식할 영국식 블랙유머와 해학과 촌철살인 속에 묻어 있는 깊은 인생의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줄거리는 포기했고 개연성 따위는 동네 강아지에게 줘버렸고 아무말 대잔치같기는 하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태어난 순수함과 아리달송한 호기심도 진득하게 묻어 있다. 그게 인내심의 버팀목이고 불쏘시개였다. 그래... 내 책에는 그게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다음 얘기가 궁금해지는 책, 머리를 정화시켜 줄 명문장 한 마디. 이런 것들이 없지만 그래도 ISBN은 붙어 있으니 국립중앙도서관에 영구보존될 것이라고 두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감동하는 듯 눈망울을 글썽였으나 이내 그 책은 정신없는 책상 구석에서 곧 라면 받침대가 될 운명임이 분명해 보인다. 여하튼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3년간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았으니 타이밍은 참 찰진 것 같다.
쇼팽의 녹턴 작품 9번에는 모두 세 곡이 있다. 오래전에는 세 곡 모두 너무 좋아서 어느 곡을 먼저 연습해 볼까 고민만 하다가 결정하지 못하고 다음기회로 미뤘는데 이번엔 단숨에 결정했다. 1번이다. 결정한 그날 비가 내린 것도 아니요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냥 진득하게 내리누르는 피곤함은 세 곡 중 가장 유명한 2번 장조곡 보다 1번 단조곡의 애잔함에 마음을 빼앗겨버리게 만들었다.
가냘프게 시작하는 도입은 순식간에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셋 잇단음표, 5, 7, 11, 22 잇단음표는 상당히 당황스럽다. 물론연주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왼손의 반주는 큰 변화 없이 반복이지만 쫙쫙 벌려줘야 하는 거리가 부담스럽다. 그래도 잇단음표는 참 맛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같이 출발했다가 잠시 각자 갈 길을 돌아서 무심히 떠돌다 다시 만나는 기분이 사랑스럽다. 중간에 서로 순서를 일부러 맞추는 건 아니지만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그래도 서로의 그 엇갈림 안에서도 패턴이 생기기 마련이다. (참고로 22 잇단음표는 11개로 나눠 익힐 수 있다) 그리고 충분히 익숙해지고 나면 비로소 진정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왼 손에만 집중했다가, 왼 손을 잊어버릴 만큼 자동연주가 되면 오른손에 집중해 본다. 그리고 오른손마저도 잊혀지면 이제 어디에도 집중할 필요가 없는 자유가 된다. 오른손의 흐름은 어떤 때는 좀 더 빠르게, 어떤 때는 좀 더 느리게... 모두 다 좋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2 주제로 들어가면 조변화가 느껴진다. 오른손의 선율이 얼핏 마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느껴진다. 일요일 오전, 평화를 부르는 생그런 햇살 속의 울림처럼.
코로나가 끝나가고 미뤘던 해외출장으로 대략 2주 정도밖에 나가 있었다. 그간 일에 치이는 것도 정신없었다. 그것도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든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머릿속이 비어 있었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놀랍게도 한 때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가슴이 눌리고 답답했던 애증이 있었는데, 무려 2주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지 못했고 손가락만 까딱거릴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있었지만 숨차게 뛰고 나서 느끼는 목마른 갈증만큼은 느끼지 못했다. 애정이 식어버린 연인처럼 우리가 서로 이 정도밖에 안 되었을까라는데 스스로 놀랐다. 다만 분명한 건 머릿속에 뿌린 씨앗의 정체와 무엇이 태어날 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걸 키우는 물은 피아노라는데 변함은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