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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May 12. 2023

군주론

군주의 자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

   고전은 항상 다가서기가 어려운 학문과도 같은 약간의 도전 의식을 필요로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하얀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文字일뿐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면 차라리 책을 덮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대신,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보다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더 많다는 긍정 마인드는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 그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이 읽다보면 어느새 종이와 문자로만 구별될 뿐, 과연 그는 어떤 시대에 살았고, 어떤 동기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배경이 더욱 궁금해진다. 스스로 자문해 보자면 혼란스러운 시기든 평화로운 시기든 분명한 점은 그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주론은 그것을 통찰력 있게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석해 공통된 법칙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보다 상세한 배경지식은 부족하지만 그가 역설하고자 하는 논지는 명확했다. (1) 과거 다양한 군주국의 종류와 각각의 장단점, 사례를 들었고, (2) 군주로서 가져야 할 덕목과 가장 중요한 군사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하였고, (3) 군주의 행동과 처신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4) 이 국가(이탈리아)를 통일시키고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인물은 바로 당신(메디치 가문) 에게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史記列傳 노자. 한비 열전) 동양이나 서양이나 왕/군주의 자리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결코 편안하게 앉아 쉴 여유를 주지 않는 곳 임에 틀림없다. 비단 현시대의 어느 기업가 혹은 정치가들의 높은 자리라고 다르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게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군주론에서는 군주의 잔인함과 인민에 의한 군주를 동일 선상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얼핏 두 가지 단어 '잔인함'과 '인민'만을 놓고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관계로 보인다. 잔인한 군주가 인민의 덕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가?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얘기하지만 둘 다 얻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헤칠 때에 덜 주저한다고 한다. 군주는 군대를 통솔하고 지휘할 때, 잔인하다는 평판쯤은 개의치 말아야 하는데 이는 지도자가 거칠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군대는 단결을 유지하거나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데 게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방법으로 두려움을 동원하고 있다. 또한 군주가 변덕이 심하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한 인물로 생각되는 경우 즉,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기질을 보인다면 군주는 자신의 행동에서 위엄, 용기, 진지함, 강건함을 과시하고 결정을 번복하지 않도록 하여 어느 누구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기만하려는 술책을 꾸밀 엄두를 못 내게 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관성 있는 지휘와 결단, 엄격한 집행은 또 다른 두려움일 것이다.


    귀족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인민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보다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인민들을 토대로 하여 군주가 되고 인민들을 부리는 법을 알며, 용맹이 뛰어나서 역경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기백과 정책을 통해서 인민들이 사기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군주라면, 인민들에게 배반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자신의 권력기 확고한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두 가지를 함께 읽어보면 결국 잔인함은 정치에서 펼치고 인민에게는 덕을 얻기 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워낙 잔인하다는 표현이 많아 잠깐 번역을 의심해본다. "잔인하다"라는 뉘앙스가 정말 맞는 것일까?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는 반드시 일치하는 표현이 항상 있을 수만은 없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로 빗대어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마키아벨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잔인하다"가 정확하다면 메디치 가문이 이미 잔인함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그를 옹호하는 표현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본다.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고 있는 군주의 모습은 메디치가의 행동을 고스란히 묘사하고 보여주고 있고 메디치가는 있는 그대로, 이미 준비된 지도자로서 추앙받으며 군주 자리에 앉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로 읽혀지게 된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고 넓히기 위한 문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현재나 과거나 마찬가지이기에 과거에도 이러한 책이 쓰이고 읽히고 현시대에서도 또다시 읽히고 쓰이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 현대 문명에서 단지 국가 간의 경계가 확실하더라도 경제 전쟁, 문화 전쟁 등 이 시대의 전쟁의 종류가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변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군주의 역할은 리더의 역할로 좀 더 현실적인 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면서 두려움으로 지배자의 역할을 할 것인지, 사랑으로 다룰 것인지, 혹은 둘을 공존시키며 활용할 것인지,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배워야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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