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어린시절

나는 반듯하고 깨끗한 것보다, 더럽고 초라한 것을 더 좋아했다.

by 사월애

나는 제대로 된 길을 걷지 않고 늘 논두렁을 걸었다. 그것은 유일하게 내가 했던 반항이자,
내 마음을 대변하고자 했던 유일한 움직임 이었다.


우리 집 뒤편에는 논과 옥수수밭이 가득했다. 콘크리트 길을 중점으로 오른쪽에는 이제 갓 싹이 난 옥수수가 왼쪽에는 이제 갓 무언가를 심은 논두렁이 넓게 펼쳐졌다. 한기가 채 가시지 않던 계절, 나는 큰엄마 손을 잡고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생활은 보통 아이들처럼 무던하게 적응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이런저런 장난을 하며 놀다가도 왠지 모르는 외로움이 느꼈다. 학교가 끝나면 구령대 앞에 머리를 가지런히 묶고 기웃기웃 서 있는 머리들이 보였다. 가방을 챙겨 나간 아이들은 실내화를 급하게 갈아 신었다. 그리곤 문 앞에 머리 모양들을 보고 자신의 엄마를 찾아 달려 나갔다. 나는 실내화를 갈아 신으며 반갑게 뛰어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자주 바라보았다.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이 마치 어둠 속에서 천국으로 가는 문을 찾아 뛰어나가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엄마는 한 손에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들고 한 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늘은 어땠냐며 이런저런 물음을 하고는 밝은 빛 속으로 고요히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실내화를 갈아 신었다. 내 발을 벗어난 실내화를 볼 때면 쓸쓸한 것이 퍽 나같이 느껴져 실내화 가방에 처넣어버렸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왔다. 두껍게 껴입었던 옷을 나는 한 꺼풀 벗겨냈다. 한결 가벼워진 몸뚱어리를 이끌고 학교로 향했다. 나는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창밖에 풍경을 그려보라고 시켰다. 또 어떨 때는 장래희망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지금과 다른 미래의 나를 만나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미술 시간이 가장 싫어졌다. 선생님은 종종 가족을 그리라고 하거나 가족과 함께했던 여행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꼭 발표를 시켰다. 나는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를 선생님 얼굴에 집어던지고 싶었다. 미션이 떨어지고 난 뒤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는 아이들 틈 사이에서 나 혼자 크레파스를 만지작거리며 거짓된 그림을 그릴지 아니면 그냥 지금 내 모습을 그릴지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억지로 선생님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그림에 큰엄마를 빠트리지 않고 그렸다.


그림을 발표할 때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가족사진에 엄마 아빠 나 그리고 큰엄마가 그려져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안간힘을 쓰고 태연한 척했지만 새빨간 얼굴에서 이미 모든 것을 들켜버렸다. 창피하고, 화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런데도 큰엄마를 빼놓지 않고 그렸다.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사랑이었으니까.


한 해의 마지막이 찾아왔다. 창밖에 나무들은 앙상한 뼈대만 남겨졌다. 나는 창밖에 나무를 자주 쳐다보곤 했다.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할 때면 앙상해진 나무 사이로 작은 빛이 흘러들어와 내 책상을 비추었다. 나는 자주 빛에 손을 갖다 댔다. 손등 위로 얇게 비치는 빛. 빛과 그늘의 온도 차이를 느끼며 나는 언제쯤 이 빛에 닿을 수 있을까 조용히 읊조렸다.


차가운 계절이 끝나던 날 나는 고학년이 되었다. 저학년 때와는 다르게 친구들 사이에 서열이 정해졌다. 누구는 잘 나가는 애, 누구는 못 나가는 애, 누구는 찐따. 그 기준은 학교에서 싸움 좀 잘한다든지, 말싸움을 잘한다든지 의 기준으로 정해졌다. 나는 못 나가는 애 축에 꼈다. 잘 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기를 못 펴고 입 다물고 피해 다녔다. 친구들과도 두루 친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잘 나가는 애한테 걸리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어느 날은 학교에서 애들 때리고 다니기로 유명한 애가 나를 불러 세웠다. 돈 얼마 있냐고 물어보며 고작 내 주머니에 있던 200원을 뺏었다. 그러곤 페인트 사탕을 사서 빨아댔다. 그 아이는 나를 자신의 따까리 정도로 생각했다. 나를 개 끌고 다니듯이 데리고 다니며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을 시켰다. 나는 맞을까 봐 바보같이 거절하지 못하고 하라는 대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싫었다. 학교에 가서 그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생각을 하면 착잡함에 한숨이 멈추질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밝은 얼굴로 대문을 나섰다. 버림받은 나를 유일하게 안아준 큰엄마에게 나쁜 모습 보여주기 싫었다.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던 해,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친구들을 만나 친해졌는데 어떻게 하다 그들 무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나는 나를 괴롭히던 친구에게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용기 내어 이야기했다. 그녀는 나를 때리려 했으나, 새로 사귄 친구들이 두려워 걸쭉한 욕만 내뱉은 뒤 사라졌다. 사실 나는 새로 사귄 친구들 무리에서 모두와 친하지 않았다. 딱 한 명과 친했었기 때문에 주로 그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학교가 끝이 나면 우리 둘은 늘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논두렁을 걸어왔다. 친구네 집이 논두렁으로 가야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저학년 때 온갖 외로움을 다 느꼈던 저 길을 걷기 싫은 이유도 있었다. 나는 울퉁불퉁한 이 길이 좋았다. 반듯하지 않은 것이 내 마음과도 같아 보였다. 어쩌다 푹 빠지는 재미도 있었다. 더러워진 운동화가 전혀 화나지 않았다. 나는 반듯하고 깨끗한 것들보다 더러워지고 초라한 것들이 더 좋았다.


처음 이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아주 작은 집이었다. 화장실 하나 아주 작은 거실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그 집을 아주 좋아했다. 가까운 곳에 텀블링을 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매일 그 집에 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시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너무 좋았다. 행복한 가정의 주인공이 잠시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거의 매일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그리고 한 해가 바뀔 때마다 집의 크기도 우리의 추억도 조금씩 커져갔다. 마지막 학년이 되던 해, 나는 겨울 공기가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외로움도 전처럼 칼날같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잡으려고 애쓰던 빛도 이제는 잡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던 날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게 했던 콘크리트 길을 걸었다. 나는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한편 쌓인 눈 사이로 추운계절을 버틴 복수꽃이 단단한 모습으로 노랗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 잔잔히 일렁이는 강물처럼, 춤추듯 사는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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