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독서실

스물여덟 오늘날 내가 느끼는 모든 것.

by 사월애

비틀비틀 걸어가는 발걸음, 흥미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버스를 기다리는 적막 속에 핸드폰을 켠다. 의미 없는 카카오톡 알림. 페이스북 소식들이 쏟아져 내린다. 나는 생각한다.


'내 인생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매일 아침 나는 독서실 알바를 간다. 3층과 4층으로 나뉜 독서실 깔끔하고 고급진 이 독서실을 매일 아침 청소한다. 청소기를 창고에서 가지고 나와 4층으로 향한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처참하게 버려진 지우개 잔해들과 공책의 파편들이 청소기 입으로 빨려 들어간다. 청소를 하다 보면 지정해 놓고 사용하는 학생들의 책상에서 여러 메모를 발견하곤 한다.


‘지금 유튜브 볼 시간이 있더냐’
‘경찰시험에 합격하자! 파이팅’
‘시작하는 방법은 그만 이야기하고 공부하자’


매일 무거운 책을 이고서 이곳에 출퇴근하는 이들, 그들이 붙여놓은 메모에서 들고 다니는 책 무게만큼이나 막중한 압박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꿈으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이 동동 떠오른다. 나는 청소를 하다 말고 멍하니 적어놓은 메모지를 볼 때가 있다. 나처럼 지금은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지만 여전히 자신의 것을 가지고 꿈을 꾸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위로가 된다. 나는 계속해서 무거운 청소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열람실 안을 헤맨다. 때때로 지우개의 잔해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는 날에는 책상 주인을 나무라기도 했다.


"청소기 돌리기 힘들게 말이야. 엄청 지워댔구먼!"


무거운 청소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작은 파편들을 흡입시키려 노력했다. 힘없이 이리저리 나뒹굴다 청소기에게 먹히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그 모습이 나 같아서 슬프기도 하다. 청소기를 다 돌리고 나면 3층에 내려와 이런저런 잡일을 한다. 그 잡일이 끝나면 나의 시간이다. 나는 데스크에 멍하니 앉아 핸드폰을 켠다. 페이스북에 수많은 이야기가 올라온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방향대로 참 열심히 하는구나.’


핸드폰을 끄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내 인생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처음 독서실 알바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독서실 매니저가 나에게 이런 물음을 했다.


“대학생이세요? 아니면 준비하고 있는 것 있으세요?”


기대에 찬 얼굴, 굳이 학생일 필요도 무언가를 하는 사람일 필요도 없는데 나는 그 기대에 찬 얼굴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겠어서 거짓말을 했다.


“아, 저는 글 쓰면서 돈 버는 프리랜서예요.”


이 말을 내뱉으면서 엄청난 처참함을 느꼈다.

나는 세계여행을 막 다녀온 작가를 꿈꾸는 백수다. 나는 늘 당당했다 꿈꾸는 백수가 좋아서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산산조각 났다. 내 자존심을 버렸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워했다는 증거이니까. 여행을 다닐 때 참 행복했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로부터 내려놓으며 이 사회에 맞추지 않고 나를 더욱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소신을 지키며 지내왔다. 그러나 오늘, 나는 아직 세상의 감옥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실감했다.


“혹시 독서실 등록할 수 있을까요?”


고요한 적막을 깨우는 여자의 물음. 나의 회상은 저 멀리 날아간다. 나는 얼른 밝은 얼굴로 되물었다.

“혹시 신규 등록이신가요?”


오전에는 신규 등록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 나이 많으신 분, 젊은 학생, 내 나이 또래 남여,

오늘은 내 나이 또래 여자가 방문했다. 나는 독서실에 관련된 정보를 신랄하게 설명하고 가격을 말했다.


“한 달에 주말 주중 함께 하시면 성인 18만 원입니다. 결제 도와드릴까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그녀는 ‘잠시만요.’ 한마디와 함께 한참을 고민한다. 그녀는 18만 원을 썼을 때 생활에 얼마나 타격이 있는지 계산했을 것이다. 나는 그 여자에게서 조급함, 막막함, 그녀의 생활환경, 답답함이 전해지다 못해 내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내 앞으로 남아있는 몇 천 만원에 학자금 대출, 28세, 무직, 한 달 수입 50만 원. 생활이 너무 빡빡하다 보니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쩔 때는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돈 버는데 집중하며 빡빡한 생활 청산하자 싶다가도 그건 나 자신에게 비겁한 행동이라며 꾹꾹 이 상황을 견딘다. 실은 나 혼자 한 달을 보내기에 50만 원은 빠듯하지만 별 불만이 없었다. 돈 버는 시간보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데 더 투자하는 일이 행복하기도 했다. 매일 하루 종일 글을 쓰며 보내는 시간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나만 괜찮다면 이렇게 사는 것도 참 좋은 인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들어오고 나를 알뜰히 챙겨주었던 지인들을 만났다. 그러나 직장인 친구들 수준에 맞추어서 논다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꼈다. 사람들과 약속을 잡을 때면 나는 계산기부터 두드렸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시작한 요가학원 강습료를 낼 때면 나는 오늘 독서실에 찾아온 여자처럼 눈이 흔들리고 내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그것부터 생각했다. 꿈을 꾸는 삶은 행복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사는 우주는 별이 빛나는 날보다 답답하고 까마득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독서실을 찾아오는 젊은 여성을 볼 때면 나의 결핍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고민을 마친 그녀, 어려운 결심 끝에 카드를 넘겨준다. 지금 이 순간의 결심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힘겨움인지 나는 잘 안다.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 거는 꿈. 나는 말 없는 응원 한마디를 건넸다. 그녀는 나에게 나지막하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안개처럼 사라졌다. 나는 가져온 책을 폈다.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부분을 노란 사인펜으로 그어본다.


‘빈곤의 냄새’


빈곤의 냄새란 흔들리는 눈동자로 카드를 건넨 그 여자와 내가 나눈 대화에서 흘러오던 울적한 비린

내 일 것이다.



벌써 열한 시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열람실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4층으로 올라섰다. 여자 열람실의 문에 포스트잇이 붙여있다.


“펜 소리 좀 주의해주세요”


누군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또 뭘 그렇게 까지 예민하게 구나 싶다가 전부를 거는 거라면 그럴 수

있다며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문을 열고 열람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 나는 조용한 열람실이 시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런 말없이 인상을 팍 쓰며 공부하는 이들을 볼 때면 서로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열심히 하는지 경쟁하는 것 같아서 그것이 꾀나 거북스럽다. 오늘도 역시 고요한 공기 중에 시끄러운 감정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 나는 그 공기가 싫어 기웃기웃 데다가 열람실을 나왔다. 내가 알바를 끝내고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다. 고요함 속에 그 미묘한 경쟁의 기류가 싫다.


나는 경쟁이 싫다. 그래서 내기 게임은 잘 하지 앉는다. 남을 누르고 내가 치고 오르겠다는 감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 차체가 미워서다.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면 누가 잘나고 못나고를 따지는 것이 되고. 결국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만족감을 찾아내게 되니까. 분명 각자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경쟁’이라는 도구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가 많다. 사람들을 만나 이런 기류를 느낄 때면 한여름에 홍수처럼 눈물이 터져 나오려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다신 그 자리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안내 데스크 자리에 돌아왔다. 독서실 이리저리를 점검하고 나니 벌써 열한 시반, 퇴근시간이다. 주섬주섬 가져온 책을 가방에 넣고 독서실을 나왔다. 침침한 도서관을 나오니 하늘이 오늘따라 쨍하고, 파랗다. 나는 흘러나오는 빛에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눈부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데 새 한 마리가 자신의 커다란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날아간다. 강력하고 화려한 저 날개 짓이 우리의 희망처럼 보인다.


‘어두운 동굴에서 날아갈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비상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나도 언젠가 파란 하늘의 완벽한 자유를 훔쳐보는 날이 오기를.’





" 잔잔히 일렁이는 강물처럼, 춤추듯 사는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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