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협을 하게 됨을 배우는 것일까?
나는 감수성이 강한 아이 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떠한 사건을 이야기하면 마치 나의 일처럼 느꼈다.
이상하리만큼 상대의 기분이 괴로울 만큼 섬세했다.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 감정 모든 것 하나를 들추곤 했다.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질문하고, 그 질문의 답을 얻을 때쯤 그것을 일기장에 옮기곤 했다.
살면서 사실 우울한 날이 더 많았다. 수많은 위로와 동정이 이어졌지만 그것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차라리 조용히 혼자 노래를 듣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되었다. 멜로디 박자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춤을 출 때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었다.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 도있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짧은 리듬과 박자로 우울한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가수가 아니라면 춤을 추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른들이 시키는 데로 꼼짝없이 삶을 이어왔다.
미디어에 나오는 유명한 댄서들, 뮤지션, 작가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서글퍼졌다. 스무 살이 되고 너무 많은 계산들을 하고 사느라 어느 것 하나에 올인하지 못했다. 춤도 대학교 동아리 활동에서 그쳤고, 노래는 시도조차도 못했다. 글공부도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서른이 되고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계획을 시작했고, 하나씩 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난다. 가족이 가난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에 시달리면, 인생은 송두리째 변하게 된다.
서른이라는 문턱에 들어선 후 끔찍이도 두려워하던 어른의 조건을 맞이하고 있다. 생계를 생각해야 하고, 집안 사정을 생각해야 하고, 내가 바라던 꿈들은 시도조차 하기 두려워진다. 서른, 나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이런 상황들은 나를 내려앉게 한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은 원하는 것을 하나씩 포기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울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나의 꿈과 이상 모두 이루어내고 싶다. 가족을 괴롭히는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싶고, 내가 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다.
나는 타협하고 싶지 않은 분야의 길을 선택했다. 나는 자존심을 버렸다. 다른 이의 시선도 버렸다. 비록 내가 바라던 그림에서는 벗어났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내가 이 길을 가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나 많은 가십들이 생겨날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단 한 문장으로 사라지게 한다.
"그들이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가십이 생겨날수록 나는 그들에게 더 떳떳해질 거다. 창피해하지 않을 거고, 나의 길에 삿대질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에게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나아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