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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Apr 30. 2019

잘자. 내 소중한 친구.

오랜만에 아들래미와 둘이 남은 집안, 공기마저 색다르구나. 

어제는 둘째가 처음으로 외박을 한 날, 유치원에서 자고 오는 슬립오버 행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 첫째는 저녁 무렵, 동생이 이부자리를 챙겨들고 유치원에 향하는 길에 따라가 배웅을 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동생 없이 우리 셋뿐이네. 그동안 동생 없이 혼자 있을 때 하고 싶었던 일 없었어?” 


라고 묻자 8살 무딘 꼬맹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동생이 어려서 그동안 같이 못 봤던 영화 있잖아~ 7살 이상만 볼 수 있는 거~!! 그거 보면 어때?” 


나의 제안에 아이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앉아 아이는 영화를, 나는 노트북을 끼고 앉아 글을 썼다. 영화가 끝난 후, 잘 시간이 거의 다 되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외동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좋아, 기분이다. 오늘은 장난감 정리도 하지 말고 엄마가 너 읽고 싶은 만큼 책도 많이 읽어주고, 너 애기때 동영상도 같이 보자! 잠도 한 시간 늦게 자자! 그리고 오늘은 안방에서 엄마랑 둘이 같이 자자!” 


아이의 어린 시절 여행 동영상들을 함께 보며 추억에 젖는다. 태국에도, 필리핀에도, ㄹ 발음을 ㅇ 으로 하는 귀여운 어린이가 저기 있었구나. 자기 이름을 ‘라라라라’ 라고 말하던 나의 작은 라군(아들 애칭)이 저기 있었구나. 꼭 멀리 가지 않고 집에만 붙어 있는데도 오늘은 꼭 어디 여행 온 것 같다. 딸래미는 유치원에, 아빠는 늦은 시간 농구 시합에 가고 나니 아들래미와 나 둘 뿐인 적막한 집 안, 내려 앉은 짙은 어둠이 꼭 다른 공간 같다. 평소보다 훨씬 늦은 밤, 드디어 자려고 누운 침대 위에서 늘 그렇듯 내가 귀에 이어폰을 꽂으니 아들이 묻는다. 


“엄마 뭐 들어요?”

“엄마 공부하는 거~”

“영어공부요?”

“아니 오늘은 책공부, 요즘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이거라도 들으려고.”

“나도 들어봐도 돼요?” 

“그래.” 


요조, 장강명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 심윤경 작가의 <설이>편을 틀어놓고 같이 누워 듣기 시작했다. 


“재밌어?”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니요. 아, 아니, 아주아주 쪼오금은알겠어요.” 

“근데도 재밌어?”

“네.” 


그렇게 30분을 함께 고요히 듣다 아들이 이내 쌔근쌔근 숨소리를 낸다. 아이 얼굴 밑의 이불을 괜히 한 번 끌어올려 주고는 나는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네가 좋아할 수 있단 거, 정말 좋은 기분이구나. 

잘자. 

내 소중한 친구. 


어느 저녁 노을 앞에서 나와 아들.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엄마에게 자랑하는 중. @Ohawe beach, 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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