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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Jun 23. 2019

계란은 죄가 없다.

밥상 다반사, 딴생각.

피곤한데도 제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몸뚱이 때문에 몽롱한 상태로나마 하루를 시작한다. 습관처럼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계란 몇 알을 꺼내 반찬으로 요리한다. 평일엔 주로 계란 프라이를, 주말엔 가끔 계란찜을 만든다. 주말엔 좀 늦은 아침을 즐겨도 괜찮으니까. 커다란 냄비에 물과 실리콘 찜기를 쌓아 넣고 가스불을 켠다. 투명하고 속이 깊은 그릇을 꺼내어 계란 7알을 정성스레 풀고, 가위로 알끈도 사정없이 잘라내고 액젓으로 간을 한다. 실리콘 뚜껑을 꺼내어 계란물이 든 그릇 위를 덮고 냄비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 위로 또다시 냄비 뚜껑을 닫는데 아뿔싸. 꽉 닫히지 않네. 약 0.5밀리미터정도 넘치는 그릇의 높이. 힘주어 냄비 뚜껑을 억지로 꾸욱 눌렀더니 설상가상 실리콘 뚜껑과 냄비 뚜껑, 그리고 계란물이 든 그릇까지 줄줄이 밀폐되어 딱 붙어버렸다. 이걸 어쩌나……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냥 그대로 두었다 계란찜이 다 익었을 때 꺼내어 볼 걸. 고 사이를 못 참고 냄비 뚜껑에 대롱대롱 매달린 3량 기차 같은 아이들을 집어 드는데.


당연한 결과.

높이 들자 밀폐력이 순간 떨어져, 다 엎질렀다.

계란찜이 계란국이 되는 순간.

으아.


평소 계란은 1일 1란만 허용되는 우리 집에서 큰맘 먹고 7알이나 썼단 말이야!!!!!!!!!!!!!!!!!!

오래간만에 아이들 좋아하는 계란찜을 푸짐하게 해주려 했단 말이야!!!!!!!!!!!!!!!!!!!!!!!!!!

게다가 나는 어제, 아주 말끔하게 가스레인지 청소를 마쳤단 말이야….. 다시 어지럽히기 싫어 어제저녁은 외식까지 했는데 아침이 되어 첫 요리를 시작하자마자 이러기야? 계란물이 사방에 튀고 넘쳐흘려 내 번쩍번쩍 빛나던 가스레인지를 다시 또 꼬질꼬질하게………. 이러기냐고오……


치사하게 이깟일로 두근대는 심장을 끌어안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의 덧없음에 대하여. 그 반복되는 노동과 티 안나는 억울함에 대하여. 늘 그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나의 막대한 노동량에 대하여. 먹여지고 치워지고 닦아지고. 먹여지고 치워지고 닦아지고. 먹여지고 치워지고 닦아지고. 돌아서면 또다시 먹여지고 배설해야 하는 인간에 대하여. 먹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먹여지고 잘 배설하기 위해 또 노동을 하고 배설했으니 또 먹여져야 하는. 결국 잘 먹기 위해 머리를 쓰고 함께 먹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그렇게 소진되었으니 또 채워야 하는. 각자 자리에서 매 순간 ‘존재’ 하기 위해 ‘소진’ 하고 다시 어떤 방식으로든 ‘메꿔야’ 하는. 모든 삶의 고됨에 대하여.


아.

하찮다고 말해야 하는지, 이쯤 되면 성스럽다 해야 하는지.


에라 모르겠다.

창밖의 나무는 바람 따라 흔들리고. 이토록 치열하게 자기 존재를 책임져보지 않은 자, 우리 인생의 숭고함 그 크기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 우리는 좀 더 낫다고 격려해본다.


그래. 또다시 아침이다.

(기도하는 맘으로 오늘도 살아보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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