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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Jul 07. 2019

남매 잔혹사

여행중이지만 결국 쓰는 건 육아일기

언젠가부터 여행을 가면 꼭 빼놓지 않고 미니골프에 한 번씩 들르게 된다. 첫 시작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였는데, 패밀리 휴양지라는 골드코스트의 여행 슬로건 덕분인지 후끈 내리쬐는 태양 아래 소매를 걷어 올리곤 퍼터를 집어 형형색색의 골프공을 겨누는 그 별거 없는 놀이가 여행자 특유의 설렘과 뒤엉켜 우리 가족 모두의 추억 한편에 자리 잡았다. 그 후 우리 가족의 또 하나의 ‘여행 문화'로 추가되었달까.

그러니 이번 남섬 여행에서도 미니골프는 스리슬쩍 일정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었다. 오늘 다녀온 곳은 조금 특별히 미니어처 콘셉트로 꾸몄다기에 약간은 기대를 했는데, 그래봤자 솔직히 골프장이야 뭐 어른들인 우리 눈엔 거기서 거기고, 아이들 쫓아다니며 공 몇 번 치는 게 크게 재밌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미니골프도 골프라고 많이 걸어야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허리를 숙였다 폈다, 운동이 되긴 하지만 그래서 그만큼 피곤하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액티비티 중 하나이고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니 눈 딱 감고 한두 시간 내어주는 것, 그거 뭐 대수랴. 나이 들면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을 텐데. 감사해야지. (응?)

별 의미 없는 사진, 그러나 풍경은 참 멋진 @Christ Church, NZ



골프와 상관없이 사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아이들 사이에 있었던 작은 다툼과 그것을 중재했던 나와의 대화들이다. 사소한 시작이었으나 큰 울음으로 끝난 일이었으니 ‘작은’이라고만 하기엔 좀 그런가? 3살 터울인 우리집 라남매는 그리 자주 혹은 크게 싸우는 편은 사실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매일같이 징하게 투닥거린다. 둘 이상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지지고 볶고 싸울 때 부모 입장이 얼마나 피곤한 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중재하기도, 반대로 마냥 내버려 두기도 얼마나 애매한 지…… 어떤 전문가 왈 저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도록 두는 것이 하나의 사회생활 규칙을 세우고 배우는 과정이라기에 나도 웬만하면 그냥 모른 척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나, 가끔은 잔소리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거릴 때가 있다. 오늘 역시 바로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냥 넘어가기엔 아이 둘 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라군이 우리 가족의 골프 점수 기록표를 들고 다니며 대표로 숫자를 적고 있었다. 일종의 서기 역할을 직접 맡았다고 하자. 라양은 그게 못내 부러웠는지 저도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빠가 골프를 치는 사이 카드를 살짝 빼와 천천히 숫자 10을 간신히 적어 내려갔다. 아직 쓰기가 어설픈 동생의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니 보고 있던 라군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자기가 쓰겠다고 했고 ‘그 카드 이리 내놔라 내가 쓸 거다.’ 라양은 ‘못 준다. 내가 쓸 거다.’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둘 다 맘이 상한 상태에서 라양 차례가 되어 골프를 쳤는데 공이 정해진 루트로 안 가고 벽에 맞고 튀어 올라 더 빨리 홀에 가깝게 이동하게 되었다. 일종의 ‘벽 뚫고 지름길’로 가게 된 셈이다. 바로 여기서 라군의 억울함이 하늘을 찌르고 뻥 터져 올랐다.

라군 : “Not fair!! 이건 Cheating이잖아!!”

아빠는 무심하게 말했다.

아빠 : “동생이잖아. 그거 한 번쯤 봐줘도 괜찮잖아? 그리고 벽을 넘으면 안 된다는 규칙도 없으니 이건 반칙이 아니야.”

라군 : “아니야! Cheating이야!!!”

오빠의 커다란 외침에 라양 역시 속이 상해 울며 자리를 피해버렸고 라군 역시 얼굴이 벌게져 눈물을 흘리며 내게 안겼다. 나도 처음엔 어쩔 줄을 몰라 아이를 무조건 설득만 하려 했다.

엄마 : “안된다는 규칙 없잖아. 이건 반칙 아니야.”

라군 : “아니야. Cheating이야! 벽을 넘었잖아. 벽은 넘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벽이 있는 거지!!”

엄마 : “너, 동생이 반칙을 해서 속상한 거야? 아니면 네가 동생을 이기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그렇게 동생을 이기고 싶어? 너보다 세 살이나 더 어린데?”

라군 : “이건 Cheating이야! 억울해!”

엄마 : “너는 그게 정말 반칙이라고 생각해?.....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엄마 아빠는 반칙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는 너랑 생각이 달라. 안된다는 규칙이 없으니까 그게 반칙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우리는 생각이 다른 거야. 나도 네 생각을 존중해줄 테니까 너도 니 생각만 맞는다고 우기지 말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걸 인정해줘. 알았지?”

라군 : “몰라. 으앙앙앙.”

엄마 : “속상해?”

라군 : “어!!”

엄마 : “왜? 뭐가 속상해? 네가 반칙이라고 생각하는 거 이해한다는데 왜 뭐가 속상해?”

라군 : "아까는 Cheating 아니라고 했잖아!”

엄마 : “아, 그래. 그땐 그랬지. 그건 미안해.”

라군 : “......”

엄마 : “너도 네 생각만 맞는다고 우긴 거 똑같으니까 엄마한테도 사과해.”

라군 : “미안.”

그렇게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나서도 아이는 분이 안 풀리는지 눈물을 멈추질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다른 맘이 있나 싶어 물었다.

엄마 : “왜 계속 속상해? 서로 의견 인정해주기로 했잖아. 동생이 빨리 홀인원해서 점수를 많이 받아서 너를 이기는 게 싫어서 그래?”

라군 : “응.”

엄마 : “왜 싫은데? 왜 맨날 너만 이기고 싶은데?”

라군 : “이기면 기분이 좋잖아.”

여기서 잠깐 할 말이 터억 막혔다. 너무 명확한 말이라 순간 벙쪘다. 그래. 이기면 기분 좋지. 누구나 그런 건 사실이다. 져서 기분 좋은 사람이 대체 어딨겠는가. 그래도 재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 “그래. 맞아. 이기면 기분 좋지. 엄마도 알아. 근데 있잖아. 너 그거 알아? 누군가를 이겨야만 기분이 좋다는 건 내 스스로 즐거움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거야. 누군가를 이기고 지는 건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 그래서 꼭 누굴 이겨야만 즐거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이 더 적어진다는 거랑 똑같아. 하지만 내가 꼭 이기지 않아도 그냥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과정이 즐거우면 그건 내 맘대로, 내가 원할 때, 아무 때나 즐거울 수 있단 뜻이라서 더 자주 즐거울 수 있는 거다~? 어때? 그게 더 좋지 않겠어?”

라군 : “......”

아이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금세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고 다시 골프를 치러 가버렸지만, 엄마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내 말을 다 들었다는걸. 아마도 기억하고 있으리란걸. 라군이랑 서로 짬밥이 몇 년인데. 그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엄마인 나는 알 수 있다.

금세 다 잊고 웃으며 함께 골프를 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혼자 생각했다. 3년이나 어린 동생으로 태어나 늘 지는 게 익숙한 라양,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또 지는 게 얼마나 지겹고 싫을까 그런 어린 라양의 마음을 떠올렸고 3년이나 오빠로 태어나 늘 이기는 것에 익숙한 라군,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한 번이라도 지는 게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그런 아이의 마음을 떠올렸다. 한때는 라양이 맨날 지기만 하니까 기죽을까 봐, 저 자존심 센 아이가 얼마나 속상할까 그것만 안타깝고 걱정이었는데 요즘은 라군이 잘 지는 법, 실패하는 법을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자라다 어느 순간 더 큰 사회로 나갔을 때 필시 겪어야 할 좌절감이 얼마나 크고 배신감을 느낄까 그것이 또 안쓰럽다.

엄지혜 작가의 책 ‘태도의 말들'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 셋의 아빠인 소설가 이기호 씨를 인터뷰한 내용이 실린 부분인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아요.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감정의 선까지 보게 되죠. 감정선이 깊어지다 보니 타인의 삶과 감정에 공감하는 폭이 넓어지고요.’

그렇다.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 하나에도 엄마인 나는 숨겨진 그 마음들까지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그것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나는 그렇게 된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싸우고 매일같이 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고, 그러려니 무시하고 넘기곤 한다. 나 역시 그러니까. 하지만 이렇게 가끔은 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그 자체로도 얼마나 위안이 될까 생각해본다. 결국 우리는 참 사소한 것들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작은 거에 삐지고 속상하고 눈물짓고 털어버리는. 그 지난한 감정들의 반복으로 결국 삶이 구성되어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오늘 아이의 흔한 눈물에도 한 번쯤 더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주는 것. 너의 마음 알아주는 내가 여기 있단 걸 은근히 티 내어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이에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자양분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 편이 있다는 건 언제나 참 든든한 일이니까.

 

언제 클래 이 눔 시키, 하지만 금세 커버리겠지... @Christ Church, 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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