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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Aug 09. 2019

8년 차 아이 둘 육아맘, 나를 살린 책 읽기.

올해 상반기 독서결산. 완독서 48권.

둘째 아이와 나 @Christchuch Art Gallery, NZ

올해 들어 독서량이 급 많아졌다. 진짜 책 많이 읽는 사람들에 비한다면야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첫째 아이 임신 기간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많은 책을 읽는 때이지 싶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보다 성인이 된 후 더욱 책 읽기를 즐기게 된 타입으로 이제서야 그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릴 때는 책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 세상에 너무 많았기에......


어른이 되어 홀로 세상 밖에 서고 보니, 온 사방에서 너무 많은 말들과 시선이 쉴 틈 없이 나를 에워쌌다. 때로 그것들은 내가 원치 않을 때에도 자꾸 나의 세상으로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에 내겐 이따금씩 숨을 곳이 필요했다. 그 어떤 휩쓸림도 없이 온전히 내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그런 시간. 듣고 싶을 때 듣고 싶은 만큼만 들어도 뭐랄 사람 없고, 심지어 주제도 내 맘대로 고를 수 있으며, 정답은커녕 대답도 ‘강요’하지 않는 가장 비폭력적인 대화 상대. 더 많은 것을 빨리 보여주기 위해 과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그저 자기 이야기를 묵묵히 풀어낼 줄 아는 그런 편안한 친구. 내겐 그것이 책이었다. 


그렇게 이따금씩 휴식을 선사했던 것이 20대 시절의 책 읽기라면, 엄마가 되고 난 후의 독서는 때로 절박한 마음으로 찾는 피난처였다. 온종일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정신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다 보면 문득 미친듯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 이대로 괜찮을까?’


아이만 돌보며 한정된 공간, 관계, 언어 안에서 맴도는 하루하루. 나만 여기 멈춰 있는 건 아닌지, 세상 밖에 다시 나갈 순 있을지,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대체 어디인 지,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다. 채워지는 것 없이 퍼주기만 하다가는 금세 고갈되어 버릴 것이 뻔해 두려웠던 그때. 그래서 뭐라도 채워 넣기 위해 다시 읽기 시작한 게 책이었다. 어린 아기를 육아하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지만 시간이 없으면 없는 대로 쪼개어가며 조금씩이라도 읽었다. 낮잠을 잘 때 옆에 누워 핸드폰 대신, 인기 절정의 텔레비전 드라마 대신. 내게는 그 시절, 책이 위로였고, 엄마로써 중심을 잡게 해주는 기둥이었다. 


요즘은 주로 밤 시간에 읽는다. 낮 시간엔 체력적으로 부담이 덜하니 주로 활동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 오면 벌렁 드러누워 책을 읽는다. 어둑어둑해진 주변 공기와 함께 축 늘어져 버린 몸과 마음. 아무 생각조차 하기 싫을 만큼 지쳐버린 그런 밤에 나는 책으로 도망친다. 무언가를 하자니 할 수가 없고 무엇도 안 하자니 이 시간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간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는데 무얼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 그럴 때 나는 책으로 숨어버린다. 문자 하나하나에 마음을 동여매고 그대로 끌려가도록 내버려 둔다. 때론 동동 뜨고 때론 저 깊이 가라앉기도 하며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도 갑자기 지렁이처럼 낮은 포복으로 기기도 한다. 손가락 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몸이지만 책 속에서 내 영혼은 비로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어느새 마법처럼 모든 불안이 잠잠해지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내가 모르는 세상은 어디에 있는지. 모든 퍼즐들이 하나씩 하나씩 제자리를 맞춰가는 그 기분이 실로 평안하다. 잠깐의 ‘쾌’로 일순간 도망치는 게 아니라 평생 함께 해야만 할 끝없는 불안과 고독으로부터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 고맙다. 


자기만의 세계가, 철학이 있는 사람. 그래서 늘 무언가를 꿈꾸고 시도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태도. 나는 책으로부터 그것들을 얻고 있지 않나 싶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지금으로썬 이 친구가 금방 나를 배신할 것 같진 않으니 오래오래 이 녀석을 믿고 가볼까.




1.멜랑콜리 해피엔딩 : 강화길 외

2.나라는 이상한 나라 - 송형석

3.모든 요일의 여행 - 김민철

4.지금 잘 자고 있습니까? - 조동찬

5.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6.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

7.그 남자네 집-박완서

8.엄마의 말뚝 - 박완서

9.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10.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 조은수

11.안녕, 동백숲 작은 집 - 하얼, 페달

12.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 테라오 겐

13.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 러네이 엥겔른, 김문주

1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15.느링 느링 해피엔딩- 볼프 퀴퍼, 배명자

16.저 청소일 하는데요? - 김예지

17.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 김도훈

18.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 신예희

19.효도할 수 있을까? - 타카기 나오코, 윤지은

20.말센스 - 셀레스트 헤들리, 김성환

21.비행운 - 김애란

22.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 황안나

23.괜찮아, 안죽어 - 김시영

24.태도의 말들-엄지혜

25.뷰티풀 라이프 1

26.뷰티풀 라이프 2-타카기 나오코, 윤지은

27.술꾼도시처녀들-미깡

28.그래도 괜찮은 하루 -구경선

29.혼자 살아보니 괜찮아-타카기 나오코, 하지혜

30.1일 1개 버리기 - 미쉘

31.30점 짜리 엄마 - 타카기 나오코, 박주영

32.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

33.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 고이케 히로시, 이정환

34.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이슬아

35.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36.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37.나쓰미의 반딧불이 - 모리사와 아키오, 이수미

38.아주 작은 반복의 힘- 로버트 마우어, 장원철

39.여행 잘하는 사람으로 큰다면 -류한경

40.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쓰기 기술-양춘미

41.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가키야 미우, 이소담

42.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스미노 요루, 양윤옥

43.아무튼, 술-김혼비

44.아무튼, 비건-김한민

45.아무튼, 식물-임이랑

46.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47.모든 요일의 기록-김민철

48.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정유정




By. 라맘

뉴질랜드 이민 일기, 행복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영상도 만드는 주부 크리에이터. 

유튜브 채널 '뉴질랜드 다이어리'를 운영중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lalama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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