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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Aug 15. 2019

시작은 '나'였지만 그 끝엔 '우리'가 있기를.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가질 수 있는 이야기의 힘. 

그동안 개인 블로그에 기록해온 뉴질랜드 이민 도전기를 처음부터 훑으며 순서대로 한 폴더에 옮겨보았습니다. 제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80여 편이 넘습니다. 하긴 세월이 3년 가까이 되어가니 그 세월에 비하면 많은 게 아닐지도요. 중간중간 바쁘다는 핑계로, 기록의 힘을 얕잡아보고 대충 넘어갔던 많은 날들의 느낌과 생각, 이야기들이 오히려 아쉽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사실 끝이 없지요.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왜 육아일기를 쓰지 못했을까. 나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면 지금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등등…… 하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더 늦기 전에 변화하고 있는 지금에 감사해봅니다.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쉬운 기록의 수단으로 사진이 등장했지요. 글을 쓰지 않는 사람도, 영상을 찍지 않는 사람도 아마 사진은 찍을 겁니다. 요즘은 점점 그 추세가 영상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보이고요. 반면에 가만히 앉아 글로써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보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어요.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쓰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 역시 함께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사진 찍는 일을 참 좋아합니다. 10여 년 전 지금의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부터 함께 사진을 참 많이 찍으러 다녔어요. 함께 찍고 찍히고 찍어주고. 직접 작은 갤러리를 빌려 사진전을 꾸미고 그곳에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렸다면 좀 느낌이 오시려나요? 


그런데 오늘 가만히 제가 적어놓은 글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와 이렇게 많은 생각과 느낌이 쏟아져 나오던 그 순간을 겨우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내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진 속 나는 웃고 있는데 과연 내 삶의 웃음으로 장식된 그 순간들만이 소중한 것일까? 내 안의 슬픔, 분노, 외로움 이런 것들도 다 나의 일부분이고 똑같이 소중한 감정들인데 왜 더 열심히 그것들은 들여다보지 않았나……’ 


물론, 그만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제게 덜 필요한 기억이라고 뇌에서 알아서 판단해 지운 거겠지만 그래도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저만의 역사이고 다신 만나지 못할, 이제는 잃어버린 나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그 모든 순간이 너무 아쉽고 애잔합니다. 마치 소중한 친구를 다신 못 만나게 된 것처럼요. 그래서 구구절절 나의 이야기를 남겨두는 건 어쩌면 나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훗날 내가 사라진 뒤에 날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역시 큰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언제든 그리고 누구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늘 인지하고 살아가는 편이라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이야기가 더욱 값어치 있게 느껴집니다. 


@ Whanganui, NZ


어린 시절부터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어요. 겨우 열몇 살 남짓이었던 제가 가장 좋아하던 책은 ‘마음을 열면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같은 종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었고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도 인간극장을 정말 좋아해서 다시 보기까지 챙겨볼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제 독서 리스트에는 7할이 다양한 사람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은 에세이들이에요. 제가 현실에서는 사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거나 인정이 많은 편이 아닌데, 이렇듯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늘 마음이 동하는 걸 보면 현실에서 부족한 부분을 책으로 메우려나 싶기도 하고요.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을 아직 잘 몰라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도 그렇게 열심히 적어보는 걸까요? 나를 더 사랑하고 싶어서. 아껴주고 싶어서. 보듬어 주고 싶어서. 그래서 열심히 적고는 또 내가 쓴 내 이야기를 혼자서 열심히 읽어본답니다. 어떨 때는 이거 나르시시즘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싶은데, ‘아냐. 내가 쓰는 글의 가장 충성 독자는 역시 나인 게 당연하지’ 싶기도 해요. (웃음) 


그렇게 혼자 읽고 즐거운 것만으로도 제 기록의 소임은 충분히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주 가끔 제 이야기를 정말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분들의 인사를 들으면 참 행복합니다. 내가 잘 써서, 잘난 사람이라서 뿌듯하다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가 닿아 의미 있게 읽혔다는 것이 그 자체가 정말 소중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거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했다거나 잠시 잊고 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거나, 혹은 곁에 있는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부디 그런 마음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자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써볼까 합니다. 기록의 힘을 얕잡아 보지 않으려고요. 말의 힘을, 글의 힘을, 생각의 힘을. 더 믿어주고 힘을 실어 주어야겠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그래도 가장 잘 나눌 수 있는 것이 그것인 것 같아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Whanganui, 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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