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못 돼도 수영장 앞집 여자가 되었다.
요즘 저는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라고 적어놓고 보니 조금 멋쩍네요. 생각해보니 저는 늘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하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산다는 어설픈 교만에 취해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는 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바쁘단 핑계로 쉽게 놓아 버리는 다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결국 그 다짐들 하나하나가 모여 저라는 사람을 이루는 것일 텐데 자꾸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다짐들이 삶 속에 안착하지 못하고 주변만 공허히 맴돌다 날아가는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합니다. 제 곁에 머물러주던 그 소중한 마음들을 잃는 것 같아서요.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저희 집 앞 작은 동네 수영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이라 겨울에는 유지비용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딱 반년만 운영되는 수영장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저희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수영장의 역할도 컸답니다. 정말 저희 집 바로 앞이거든요. 여느 리조트나 호텔 객실에서 찾아가는 전용 수영장만큼이나 가까워 접근성이 최고입니다. 집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10걸음 정도 걸으면 수영장이니 말 다했지요? 주변 이웃들이 가끔 수영복을 입은 채 길을 건너는 저희 가족을 보며 묻곤 합니다.
"오, 좋은데? 편하지?"
"당근! 이거야말로 리조트 라이프스타일~ 아니겠어? 최고이지?"
사정이 이러하니 평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수영장을 자주 이용하곤 했지만 올해는 조금 더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수영장의 시즌 오픈과 함께 올여름은 가능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마다 새벽 수영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요즘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무 생각 없이 욕실로 걸어가 전 날 널어둔 수영복을 꺼내어 주섬주섬 입기부터 합니다. 커다란 수건 하나 허리춤에 덜렁 두르고 현관문을 열면 조금은 차갑지만 그렇다고 매섭지는 않은 포근한 새벽 공기가 드러난 어깨와 팔뚝, 등허리에 닿아 남아있던 잠을 몰아내지요.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익숙한 얼굴들과 대강 인사를 나눈 뒤 심호흡을 한 번 하곤 얼른 물속으로 쑤욱 몸을 던집니다. 체온에 맞게 적당히 데워진 물 온도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해요.
물안경을 고쳐 쓰고 머리와 팔을 쭉 내밀며 수면 위로 미끄러지면 그때부턴 그저 반복되는 일정한 리듬에 나를 맡기는 것뿐, 다른 건 신경 쓸 게 없습니다. 몸을 쭉 밀어내며 발차기를 시작하는 순간 , 그저 모든 건 시작될 뿐입니다. 그냥 흘러갑니다.
음--파.
음--파.
물속에서의 날숨과 수면 위로 쳐든 고개로 들어오는 들숨이 하나의 일정한 리듬이 되어 온 몸 세포 하나하나를 지휘합니다. 이 단순한 행위는 단숨에 모든 걸 비워낼 수 있게 합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또 재미있는 게, 물속에서는 몸에 단단히 힘을 주는 순간 오히려 몸이 부자연스러워지며 가라앉고 말지요. 편안히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맡겨야 그제야 몸이 뜹니다.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보듬어주듯 물방울 하나하나가 온 힘을 다해 수면 위로 나를 밀어 올려주는 느낌이 엄청 든든해요. 귀에 들리는 소리 감각마저 평소와 다르게 약간씩 굴절되어 먹먹하게 들리기 때문에 더욱더 다른 세계에 있는 기분이 듭니다. 평소 휘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단단히 버티느라 경직되어버린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유연하게 나를 맡기는 시간, 참 소중한 경험입니다.
습관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습니다. 아침에는 이렇게 운동 습관을 만들고 있다면 요즘 제 저녁 루틴은 한 시간의 ‘무조건’ 영어공부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이들을 재운 뒤 비로소 저만의 시간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 딱 한 시간, 딱 그만큼이라도 영어공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상관없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열심히 쉐도잉을 하거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어려운 문장과 발음을 연습합니다. 때로 영 집중하기 힘든 날에는 그저 흘려듣기용 콘텐츠를 귀에 꼽고 있기도 하고,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이나 미드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무조건 한 시간은 꼭 영어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로버트 마우어 저, 장원철 역) 모든 변화는 정말 아주 작은 반복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루 단 1분 가만히 서 있기를 반복하면 그것이 운동하는 습관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지만 단 1분이라도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을 정하고 실천하면 그것이 복리처럼 불어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 책의 메시지에 강력하게 동의합니다. 습관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거창한 목표는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포기하도록 만드니까요. 저는 핸드폰 알람을 설정하지 않고 새벽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몇 시에 꼭 일어나서 얼마큼 해야지,라고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았어요. 다만 제가 자연스레 일어나지는 그 시간에 잠깐이라도 들러 하다못해 15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좀 늦게 일어나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요. 기분 좋게 가서 잠깐이라도 하고 옵니다. 영어 공부의 경우는 시간만 정했을 뿐, 거창한 기준이나 목표는 세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게 주어진 그 시간만큼만 어떻게든 채워보자며 시작했지요. 매일매일 아이들은 잠들고 저에게 그 한 시간은 매일매일 오는 것이니까요. 따로 시간을 쪼개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니 해볼 만하다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목표 다, 약간은 느슨하게, 하지만 꾸준히 해내는데 의의를 두고 세운 것입니다.
유명한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가 있지요. 스트레칭할 때 무슨 생각하냐고 묻는 질문에 김연아 선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저도 요즘 사실 그런 마음입니다. 아침에 수영도 그냥 가는 거고, 저녁에 영어공부도 그냥 합니다. 잘 되든 말든 뭐가 남든 안 남든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무조건 해보려고요. 식후 양치를 안 하고 잠들면 찝찝한 기분이 남듯이, 지금 제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도 언젠가 그렇게 당연한 일상이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