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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Sep 22. 2019

너희가 정말 우리 문화에 관심이 있어?

뉴질랜드 유치원에서 태권도와 한글을 가르치다. 

딸이 다니는 뉴질랜드 유치원에서는 매주 특별 테마를 정하여 그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 이번 학기 안내문을 받았을 때 9월 즈음에 Diversity week(다문화 주간)가 있길래 아차 싶었다. 연초에 아이 담당 선생님이 언젠가 우리 보고 Korean week를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그러면 9월에 한국의 대표 명절인 추석이 있으니 그때 준비해보겠다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럼 설마, 이 Diversity week는 우리 때문에 기획된 거야?? 미리 말을 좀 해주지.' 부담 주지 않으려 했던 건지 그냥 바빠서 까먹었던 건지 다문화 주간이 다 되어서야 내게 묻는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무언가, 아이들이랑 나눌만한 거 있을까?' 하고. 없긴 왜 없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생각해왔는데. 내가 또 얼마나 작은 일에도 열심히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피곤하게도……) 혼자 속으로 구시렁대고는 겉으론 세상 쿨한 척 몇 가지 흘려 준다. 


“음….. 일단. 우리 애들이 코리안 트래디셔널 코스튬을 갖고 있으니 그걸 내일 가져올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또 원하는 아이들은 입어봐도 되고. 입고 사진 찍어도 좋을 거야. 그리고 또 음… 태권도라고 한국 전통 마셜 아츠가 있어. 유튜브에 간단하게 아이들이 따라 할 만한 비디오가 있을 거야. 내가 몇 개 찾아보고 알려줄게.”


“오, 태권도? 좋다. 이번 주 내내 비 온다는 예보던데, 실내에서 무브먼트로 하면 딱이겠어. 아주 좋아.” 


“그리고 사실… 내가 요리도 몇 가지 해볼까 싶어서 생각해봤는데. 근데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요리는 좀 힘들겠더라고. 사실 한국 요리가 대부분 복잡한 편이고 또 요리는 불도 써야 하고 그래서 위험할 것 같아서.”


“아 그래? 그러면 부엌에서 문 닫아놓고 큰 애들 몇 명만 데리고 해도 돼. 선생님이 옆에 붙어서 도와주고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 그럴 수도 있구나. 근데 있잖아 사실…… 내가 해보고 싶은 그 요리가……. 내가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아 그래?......”


“엉.. 헤헤. 내가 연습 좀 해보고 잘 되면 담에 와서 한 번 해볼게.”


“그래그래. 네가 불편한 건 안 해도 돼. 한복이랑 태권도만으로도 충분해. 고마워~ 고마워~”

“아냐 뭘. 그럼 내가 좀 더 아이디어 생각해보고 정리해서 알려줄게. 이따 봐~”


((참고로 한국 요리로는 믹스 없이 반죽까지 직접 해서 호떡을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얼마 전 집에서 아이들과 해보았는데 유치원에선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하하……;;))


                    

                    

며칠 뒤 연습해본 실제 호떡. 음....보기엔 예쁜데....???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는 집에 돌아와 태권도 동영상을 찾아보고 가만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보니, 문득 아이들 영어 이름을 한글로 써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mily라면 그걸 소리 나는 대로 에밀리 이렇게 적어주는 것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다른 언어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시골에서 영어가 세상 전부인 줄 알고 크는 아이들에게는 꽤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다. 이 아이디어를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알리니 정말 멋진 아이디어라며 엄지를 척척!


그리하야 나는 이틀 동안 하루 한두 시간 정도를 할애해 유치원에 나가 아이들에게 한글로 이름도 써주고, 한복도 가져가 아이들에게 잔뜩 보여주고 입혀주었다. 내 한복도 가져가 보여주었는데 커~다란 드레스 같은 느낌의 속치마와 처음 보는 디자인의 꽃신을 아이들이 특히 신기해했다. 우리 딸은 한복이 꼭 Fairy(요정)가 입는 옷 같다며 이참에 제대로 한복사랑에 푹 빠졌으니 그것만으로도 뿌듯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한복 치마가 매우 특별하다며 유치원에서도 종일 그걸 입고 생활했고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에겐 그녀가 덜 특별해하는(?) 색동저고리를 양보해 둘이 세트로 맞춰 입곤 종일 짝짜꿍 즐겁게 보낸 모양이었다. 

        


우리 작은 요정들.

                                    

짬을 내어 태권도도 직접 가르쳐주었다. 원래는 비디오만 보여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나의 오지랖이 또…. 발동하여 


“How about following me?” (자, 날 따라 해볼 텨?)


라며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태권도 동작을 설명하고 선보였다. 필요한 영어 단어도 잘 모르면서…… 주먹을 앞으로 쥐어 보이곤 “이거 이거… 뭐라고 하지?” 주변 유치원 선생님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니 Fist라고 한다. “어 맞아 맞아. fist.” 


“Put your fist in front of your belly button! and bend your knee like this. and punch! 태! 권! 도!”


아 나 지금 뭐래… 뭐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아이들에게 태권도도 가르쳤다.

휴.


나중에 들어보니 한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물어보더란다. 내가 이제 유치원 새 선생님이냐고. 으하하. 선생님들이 딸의 러닝 스토리에 올려준 나의 태권 사진을 보더니 남편이 폭소한다. 


“역시…! 자기는 정말 최고야…!!" 

                


도복까지 구했음 더 딱인데......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이런 종류의 제안을 심심치 않게 받게 된다. 특히 역사적인 배경부터 이질적인 다문화가 평화롭게 융화되며 발전해온 나라답게, 다문화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더욱 이를 나라의 장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솔직히 가장 먼저 드는 속마음은 이런 것이다.


‘응? 뭐라고?

사실 나도 우리 문화를 잘 몰라……

그리고 너희가 정말 우리 문화에 관심이 있어? 이거 그냥 보여주기식 행사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용기를 내어 아이와 친구들을 향해 나섰던 건,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나부터 바꿔야 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뿌리를 대해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어린 나이에 모국을 떠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며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에게 비록 우리가 소수민족이긴 하지만 (적어도 뉴질랜드에선) 고유의 유서 깊은 문화를 간직한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피부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매일 한글 공부를 해야 한다며, 너희들이 아무리 뉴질랜드에 살고 있어도 한국 사람인 것이 변하진 않는다며, 아이들에게 말로만 청산유수 설명할 게 아니라 나부터 우리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이곳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낼 때 그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태도를! 그대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그들이 정말 관심을 갖는지, 존중을 하든 지 말든 지, 그게 뭣이 그리 중헌디. 그저 우리 스스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 지 알고 자부심을 갖는 것. 어쩌면 그것부터 아닐까?                                            




                                       

** 짤막한 뒷얘기: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한국을 대표할만한 음악이 뭔 지 좀 알려줄래? 내가 Swedish, Scottish, Japanese, Chinese 등등 다 찾았는데 한국 음악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서.” 


“음악? 음……. 아! 요즘 한국 K-pop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해! (내 머릿속엔 BTS뿐)”


“아…….. (당황한 눈치.) 어…. 음……”


“(뭔가 이상한 낌새를 그제서야 알아차림)아~ 너 전통음악 찾는구나?”


“어!!! 그렇지 그렇지!! Folk song 같은 거 말이야. 힙합 에이요! 이런 거 말고. 으하하. 느낌 알지? ”


“아… 오키오키! 느낌 알쥐~ 우히히. 내가 찾아줄게. 잠시만.” 


하고는 아리랑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 판소리와 타령 등등 민요 앨범을 찾아주었다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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