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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Aug 16. 2020

아, 이 마성의, 사랑스러운 나의 시골 동네여.....

뉴질랜드 시골살이 이민일기 

날씨가 너무 좋은 토요일, 가만있을 수가 없어 오래간만에 동네 산책에 나섰다. 이사 가기 10일 전, 정신 없어지기 전에 여유롭게 동네를 마지막으로 만끽하고 싶기도 했다. 



걷다가 지나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 많다. 저 아이는 우리 딸 유치원에서 처음 사귀었던 절친이었지… 낯익은 인상의 엄마와도 웃으며 인사를 나누며 지나가고.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아는 사람 집을 지나가던 참, 플레이센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지인을 마주친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에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와 오랜만이야. 요즘 어때?”


“나? 음…… 아주아주… 임신 중인 기분? 크크. ” 


“오 그러게. 완전 임산부네 이제 정말. 안 그래도 네 생각 했었는데 도통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


“아 진짜? 그러게. 정말…” 



좋은 주말 보내라 인사를 하고 오늘 산책의 목적지인 동네 바닷가로 향했다. 처음 이 동네에 우연히 놀러 왔을 때 이 바닷가 풍경과 사람들의 친절한 인상에 반해 눌러앉게 되었었지. 비록 코로나 때문인지 오늘은 날씨에 비해 사람이 많진 않지만, 여전히 예쁜 바다. 환상적인 하늘. 사람들의 밝은 인상. 2년 반전 갓 뉴질랜드 온 지 1년 되었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같은 사람일까? 또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길진 않았지만 많은 경험으로 농축된 2년 반의 시골 생활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어떻게 변화시켜 왔을까? 



아이들과 놀이터와 모래 위에서 시간을 좀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들내미 최애 절친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또 이 집안사람들도 죄다 마당에 나와있네. 각목이며 톱이며 쿵짝쿵짝 늘어져있는 걸 보니 뭔가 작업중이었나 보다. 



“안녕- how are you? 날씨 좋지? 뭐해?” 


“아 우리 온실 만들고 있던 중. 잠깐 들어와서 차 한잔하고 가.”


“아 그때 말했던 그 온실? 우와. 솜씨 장난 아닌데? 너의 남편은 정말 핸디맨이구나! 내 남편은 그냥 핸드맨인데! 그저 손이 달린 human being이랄까......”


"뭐라고? 푸하하하하."



아이들은 어느새 저들끼리 어울려 마당을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커피 한 잔 나누며 수다를 떨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단연코 중심 화제는 우리의 이사 이야기. 아직은 말해도 될지 몰라 아이 친구에겐 비밀로 했다는데, 어른들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아들 친구가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져서 묻는다. 



“라군, 어디 이사가나요?” 


"아 그게..... 그렇게 됐단다."


"왜... 왜요?"



순간 어른들도 모두 가슴이 찡-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걸 참았다.



휴- 다행히 아이들은 아이들이라 또 금세 잊곤 다시 밝게 어울려 논다. 까불이들. 참 다행이다. 맑고 예쁜 지금 마음 영원하게 도와주세요- 속으로 혼잣말을 해본다. 

새로운 만남보다 헤어짐이 100배는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요즘 들어 생각한다. 그동안은 뭐든 새로운 일을 벌이고 떠날 때마다 그 설렘이 훨씬 크게 느껴져 다른 자잘한 감정들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편이었는데, 임신 중이라 그런 지… 이 시골 마을이 뭔가 우리에게 마법을 걸었는지… 그냥 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너무 행복하게 잘 지내던 마을을 떠나려니 엄마로써 마음이 짠해서 더 그런 건지.... 아무튼, 살면서 전에는 분명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랄까. 묘하다.  



아이 친구 엄마가 작별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냥 조용히 살짝 도망치듯 이사 갈 거냐며 웃으며 묻는데, 안 그래도 그게 요즘 젤 어렵고 복잡한 결정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왜냐면 갑자기 코로나 레벨이 상향 조정되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제날짜에 이사를 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고, 이런 상황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모임을 해도 되는지… 정부의 방침이 어떻게 흘러갈지 등등 여러 가지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정도가 제각각 다르기도 할 테니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다른 한 친구도 헤어진단 소식에 작별 파티 거하게 해야겠네라며 운을 떼는 걸 보니, farewell party가 또 여기 문화 중 하나인 것 같은데… 흠. 어째야 하나. 뭐 파티라고 해봤자 캐주얼한 수다 모임에 스낵&음료 곁들이는 정도면 되겠지만.. 암튼. 짐 싸는 거 좀만 더 확실하게 마무리해놓고 나면 다음 주는 진짜 마지막 주니 사람들과 굿바이 인사 나눌 일만 남았으려나? 



너무 잘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보며 왠지 뭉클해졌던 티타임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한 대가 지나가며 멀리서부터 경적을 빵빵 울린다. 손을 흔들고 지나가는 얼굴을 보니 이번엔 딸내미 절친네 가족. 올 연초에 내게 마음 아픈 일 있을 때마다 오며 가며 특히 신경을 많이 써주고 망설임 없이 같이 울어주었던, 잊지 못할 친구 중 한 명. 




 안 그래도 며칠 전, 남편이랑 산책을 하는데 누가 경적을 빵빵빵 신나게 울리며 지나가기에 얼굴도 못 보고 누군지도 모르겠으면서도 손을 신나게 흔들어주고는 ‘누구지?’, ‘누구였지?’ 하며 둘이 머리를 맞대곤 시답잖은 추리를 하면서  ‘여긴 참 이상한 마을이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났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아는 얼굴을 꼭 몇 사람씩은 무조건 만나고 마는 마성의 동네.



아 사랑스러운 나의 시골 동네여.  



며칠 전 흐린 날 뜬 무지개 @MT.Taranaki, 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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