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나고 자란 다는 건...
아이들이 제법 많이 컸다. 다섯 살인 둘째는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인데다 말 그대로 영원히 둘째인지라 아직도 아기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이제 아기 티를 벗었다.
최근에 주변 엄마들 중 셋째인 막둥이가 만 5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하는 일이 많았다. 셋째쯤 되면 좀 무덤덤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막둥이까지 자기 손을 떠나보냈다는 그 느낌 때문인 지 늘 씩씩하게만 보이던 센 언니들이 연달아 눈물바람이었다. 코까지 새빨개져서는. 그들과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조차도 옆에서 눈물이 나 참느라 혼났다.
“You’ve made me cry …. You must have this kind of thing already two times before. It’s your third time. But why are you also …?”
(너 진짜 나까지 울게 만들 거야? … 너 분명 위에 두 아이 다 겪지 않았니? 벌써 세 번째잖아? 근데 왜 또 울어?)
나보다 덩치가 두 배쯤은 큰 그녀를 꼬옥 안아주는데 그녀가 눈물을 훔치곤 말했다.
“Life is toooooooooooooooooooo short!!!!!”
(인생………………………. 진짜 겁내 짧다!!!!!!!!!!!!!!!!!!!!!!!!!!!!)
그녀의 말을 그저 그런 뻔한 인생 푸념으로 넘기기엔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녀의 생이 너무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이 마을의 플레이 센터를 다녔고 당연히 이곳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해 아이를 셋이나 낳자, 그녀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 그녀가 플레이 센터에서 만났던 다른 주변 엄마들, 한 마디로 그녀의 친구의 엄마들인 동시에 그녀 엄마의 오랜 친구들이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손주처럼 키워주었다. 셋째까지를 그렇게 다 키우고 이젠 세 아이 모두 그녀가 졸업한 학교에 다닌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그 학교의 파트타임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아주 어려서부터 보고 겪은 그녀는 자연스레 생이란 얼마나 순식간인지, 시간이란 녀석이 어찌나 정 없이 제 갈 길만 가는지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는 것이리라.
그녀가 막둥이까지 학교로 보낸다는 것은 그녀의 플레이 센터(*지역 공동육아) 생활 역시 끝난다는 이야기. 더 이상 플레이 센터에서 지지고 볶는 나날이 돌아오지 않는단 뜻이다. 그녀 자신이 어린 시절 자유로운 나비처럼 날아다니던 그곳에서 그녀의 아이들은 한 마리의 원숭이가 되어 여기저기 뛰고 굴렀다. 때론 무릎이 깨졌고 팔이 부러졌다.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웃었다. 그녀와 그녀 엄마의 역사였던 페이지는 이제 3대 가족 모두의 역사가 되었다. 어디 가족뿐인가.
그녀의 막둥이 T가 플레이 센터를 졸업하던 그날은, 어린 시절 그녀와 함께 플레이 센터 생활을 하던 시절 젊었던 엄마였지만 지금은 T가 가장 좋아하는 노년의 유치원 선생님이 된 노라(Norah)가 함께 했다. 늘 냉정해 보이던 인상의 노라 역시 그날 눈이 새빨개져 숨길 수가 없었는데 노라야말로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겠지…... T의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과정, 결혼, 출산,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의 성장과정까지. 가족만큼이나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보아온 이웃이란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평생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나는 그런 이웃을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다. 솔직히 이제는 한국 근대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아닌가. 내 눈앞에서 현실로 일어나는 걸 보니 얼떨떨한 정도였다.
노라가 플레이 센터에 있는 나를 발견하곤 놀라 물었다.
“어? 너도 여기 있었어? 난 네가 여기 있는 줄은 또 몰랐네.”
유치원에서만 가끔 마주치던, 최근 유입된 이민자인 내가 플레이 센터에 섞여 있는 모양이 꽤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이 마을에서 살 수 있을까 쉬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이방인인 주제에, 그래도 나 역시 한 번쯤 쓸데없는 공상을 펼쳐본다.
20년 아니 30년 후에도 지금 만난 이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된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나 역시 새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린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될까?
"야. 인생 있잖아? 그거 겁니 짧다!!!! 꼭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