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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Oct 21. 2019

자기는 이민 와서 정말 좋아?

뉴질랜드 생활 3년만에 키위 친구 앞에서 흘린 첫 눈물

뉴질랜드에 이민을 오고 아이들을 키우며 제가 새로 시작한 도전중에는 이곳 특유의 공동육아 문화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Play Centre라고 부르는 곳인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으라면 공동육아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편의상 저는 한국분들에게 소개할 땐 공동육아라고 의역해서 말하곤 합니다. 어느덧 이 플레이센터 생활을 시작한 지도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처음엔 사람들과 한 두마디 말을 섞는 것에도 덜덜 떨었는데 이젠 1년에 한 번씩 크게 모여 노는 술자리겸 회의자리에서도 끝까지 남아 버틸 정도로 깡다구가 생겼어요. 의연해졌다고 해야할까요. 


이 모임의 특성은 역시 단체 생활이다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민자로써 특히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전업맘으로써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니죠.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있었어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게 재밌고 또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들, 온정을 느끼는 시간들이 특별한 추억이 되고 있어요. 


그런데 하지만 말이에요. 

솔직히.


저는 아직도 이곳에서의 인간관계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에요.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럽고, 종종 서운하기도 해요.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까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요. 또 저 역시나 그들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그렇지요. 가뜩이나 살아온 모든 문화적 배경도 너무 다른데...... 언어도 부족하니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지난주에는 나름 제게 기록할만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처음으로 제가 겪는 이런 어려운 감정에 대해 키위(뉴질랜드인) 지인에게 이야기하다 살짝 눈물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럴 생각은 정말 아니었는데 꾸역 꾸역 눌러두었던 감정이 저도 모르게 스리슬쩍 비집고 나왔던거죠. 



"Oh, Cho~ Don't take personal. You'll be alright." 

(여기서 Cho는 제 영어식 간편 이름입니다.)


플레이센터(공동육아) 관련 일 때문에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힘들다고, 점점 내 개인적으로도 자신감을 잃는다고 털어놓은 제게 지인은 이렇게 조언해 주었어요. 네가 맡은 일은 일일뿐이고 사람들과 개인적인 관계로까지 그 감정을 이어가지 말라는 뜻이었겠죠.


사실, 다 큰 성인이 아침 댓바람부터 것도 외국인앞에서 울 것까진 없었는데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중엔 이야기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제가 느끼는 어려움을 모를테니까요. 끝까지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분명히 존재하는 그 마음들이 사라지진 않잖아요. 나 혼자 끌어안고 있는다고 절로 그 감정들이 없는 감정이 될 수도 없거니와 도움을 얻거나 공감을 받을 수도 없겠죠. 심지어 부정적인 마음의 에너지만 더 불어나 오해는 또다른 오해를 사고 더 많은 관계들에 있어 불신을 낳았을 겁니다. 


저는 그날 지인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요.


"Thanks a lot. Just talking with you, can be helpful enough."

정말 고마워. 그냥 너랑 말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Of course, Sure. Any time."

당연하지~ 언제든 환영이야. 


그 친구에게도 말했듯, 단순히 그냥 누구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좀 나아진다는 것. 그게 나눔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민 와서 계속 처음 하는 일, 잘 모르는 일, 낯선 사람들과 관계들, 뭔 소린 지 모르면서 쓰고 있는 말들 등등... 감정적으로 소모가 많은, 때로는 일종의 감정노동인가 싶기까지 한 일상들이 이어졌습니다. 네, 솔직히 피곤합니다. 얼마전 뉴질랜드 이민 만 3주년을 꽉 채웠고 돌이켜보면 그동안 저는 참 많은 도전들을 해왔어요.


어젯밤 자기 전,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자기는 이민 와서 좋아?"


좋다더군요.


"어떤 게 좋아?"


그냥 맑은 공기만 마셔도 본인은 너무 좋다더군요. 물론 힘든 일도 많지만 그만큼 또 좋은 게 많아서 괜찮다고.           

아마도 남편이 바라보는 이민 생활은 이런 장면들이겠죠?


                                

저는 오늘 아침, 수영을 하다 물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습니다. 물론 좋은 일도 많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라고. 심지어 좋은 일이 더 많고 힘든 일이 몇 가지 안 될 지언정, 아니 그렇다고 힘든 게 사라지냐고. 힘든 건 그냥 힘든 거라고. 그렇게 제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냥 힘들 땐 힘들어하라고. 괜찮다고요. 좋은 걸 보고 좋은 생각을 하고, 이겨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때론 그냥 힘든 건 힘든 것일 뿐이라고요. 


잠깐 멈춰 서서 숨을 고른 뒤, 저는 다시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묵묵히 헤엄을 쳤습니다.



 


By. 라맘

뉴질랜드 이민 일기, 행복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영상도 만드는 주부 크리에이터. 

유튜브 채널 '뉴질랜드 다이어리'를 운영중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lalama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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