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심리상담 2회기: 분노의 뿌리를 찾아서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2회차 상담의 주제였다.
상담사가 말했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두 개의 감정만이 존재한다고.
사랑: 접근을 의미하는 긍정적 동력
두려움: 회피를 의미하는 보호적 반응
나머지는 모두 이 둘로부터 파생된 변주곡들이라고한다.
흥미로운 접근이다.
그렇다면 분노라는 이 뜨거운 감정도 결국 두려움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예측하고 통제하던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욕설이 터져 나오는 순간도,
사실은 예측 불가능한 위험 앞에서 느낀 두려움이 분노로 변질된 것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의미 중심적이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환경에서 더욱 동기부여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억압과 통제, 끊임없는 간섭과 의심이 난무하는 환경에 놓이면 그런 두려움이 분노로 치환되는 것이다.
나는 작년 상사에게서 쏟아지는 장문의 메시지들. “제대로 확인했냐”고 묻는 문자들.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확인 전화들. 이 모든 것들이 내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는 신호로 읽혔고, 그 순간 나는 분노했다. 나를 믿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분노로 치환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험했다.
통제가 불가능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예측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 앞에서 느끼는 불안함이 곧 두려움이 되고, 그 두려움이 어느새 분노로 변해있었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내가 설정한 질서가 무너질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분노가 피어올랐다.
결국 분노는 두려움이 입은 가면이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릴까 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까 봐,
내 존재가 무시당할까 봐
느끼는 근본적인 두려움 말이다.
나는 본래 위험회피 성향이 강하고,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러한 성향은 나에게 어떤 외부 통제 상황에 놓일때 마다, 억압적인 환경에 놓일 때마다 감정은 기시감처럼 되살아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두려움은 쉽게 분노로 치환되었다.
그러니 분노는 단순히 감정의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과거, 기질, 경험이 빚어낸 총체적 반응이었다.
이제 분노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자문해보려고 한다.
지금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국은 다시 비슷한 상황, 비슷한 구조, 비슷한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동일한 방식으로 촉발되고 말 것이다. 반복되는 고통의 회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노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품고 있는 두려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분노는 두려움의 아이였다.
그리고 두려움은 사랑하는 것이 있기에 존재하는 감정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 자신,
나의 안정감,
나의 의미,
그리고 나의 존엄.
이제 나는 안다.
이 분노는 나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이 자신을 드리울때 분노로 치환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