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도 인연이었다.

육아휴직 중 만난 오랜 인연

by 로니부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며 시간맞춰 보자는 친구의 연락.

대학 시절 함께 방황했던 그 친구가 이제는 아이 아빠가 되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이 우연한 조우가 내게 던진 질문은 예상보다 깊고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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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라는 이름의 환영

홍대에 발을 내딛는 순간, 과거의 내가 환영처럼 나타나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곳은 내가 젊음과 가능성을 마음껏 뿌리고 다녔던 곳이었다.

거리는 변했지만 또 그대로였다.

수많은 외국인들의 물결과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시아의 유명관광지 오사카나 타이베이의 관광지에서 느꼈던 그 국경 없는 혼재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속을 거니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한때 이곳의 일원이었던 내가, 이제는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그 공기,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20대의 나를 마주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모든 문이 열려 있었고, 모든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고 느꼈다.

지금이라고 해서 가능성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쨌든 지금의 나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아니 운명의 물줄기에 떠밀려 왔다.


거울 속의 나, 친구 속의 나

그 물음 끝에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의 과거를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그 당시 그친구도 빡센 아버지와 가난의 그늘 아래서 허덕였고,

나는 정체성과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질문들, 커리어,

그리고 연애에 대한 혼란으로 헤매고 있었다.


삶의 방향은 전혀 달랐지만,

이질적인 듯 근원적으로 통했던 우리는

각자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우리는 삶의 목표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동일하지 않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다르다.

내 삶의 궤도를 정확히 같이 하는 친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뜨겁고 서툴렀다.

어리고 철이 없었지만, 함께였고, 공명했다.

그 공명이야말로 우정의 본질이 아닐까..


시간의 교차점에서 발견한 것

잊혀졌던 친구라고 느껴졌지만, 동시에 그 친구를 통해 나는 다시 정의받고 있었다.

이질적이지만 근원적으로 통했던 친구가 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는 것을,

그 때 그 장소와 그 사람이 그 기억을 불러일으켜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10년 후 2035년, 마흔셋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0년 후 2045년, 쉰셋이 되어서도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게 될 날이 올까?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가슴속에 남겨질 시절 인연으로 끝날까?


시절인연도 인연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 친구와의 인연은 내 인생에 깊게 남아있을 추억이다.

이 확신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거리가 멀어져도, 상황이 변해도

그 기억은 영혼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삶을 지탱해주는 진정한 기둥이 아닐까.


각자 다른 삶의 궤도를 가지고 살고 있지만,

잊혀졌다고 느껴졌던 친구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변하고,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는 시절인연을 잠깐의 바람쯤으로 여긴다.

지나가면 그만인 사람, 머물 이유 없는 관계로 치부하고 무심히 흘려보낸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 깊은 공명,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시절인연도 인연이다.

그 인연은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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