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이겨도 마음은 지는 싸움

육아휴직 심리상담 3회기: 가족과의 논쟁에서 이겨도 찝찝한 이유

by 로니부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다.

이 명제를 깨닫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논리가 강할수록 더 강한 감정적 방어벽을 세운다는 것을 알기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며 무수히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은 찝찝하고 거슬리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종종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담긴 뉴스, 유튜브 콘텐츠를 메시지로 보낸다. 나의 의견을 묻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강요와 주입의 의도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거 보내지 마시라고 완곡히 사양의 문자도 보내보았고 논리로 대응했던 적도 많다. 팩트로 조목조목 따지고, 반박 논리를 준비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하고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결국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기면 이길수록 아버지와의 관계는 멀어졌고

마음의 벽은 높아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논리적 공격을 받은 사람은 논리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존재를 공격받는다고 느낀다. 사람의 자아는 견고하게 지켜지고 싶은 것이고, 그 자아에 균열을 내는 논리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다. 논리가 강할수록 감정의 방어벽은 더욱 높아지고, 결국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이것은 비단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안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있었다. 나는 나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내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그 아이로 돌아갔다.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쳤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때마다 서늘한 좌절감을 느끼며 분노했다.

그것은 사실 분노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다시 인정받지 못할까 봐, 존재가 지워질까 봐, 나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할까 봐 느끼는 공포.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었고 분노라는 외피를 두르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만든 엄격한 분위기 아래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좋은 성적으로 나를 인정받아야 했다. 주말마다 회사에 끌려가 책상 앞에 앉아 문제를 틀릴 때마다 아버지의 호통과 함께 책상이 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나에게 세상은 아버지였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곧 생존이었다.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속에선 분노가 자랐다.


성인이 된 지금, 아버지와의 갈등은 소재만 바꿔서 재현된다. 나의 의견을 묻는 척하며 본인의 신념을 주입하려는 그 방식이 너무나 익숙하고 싫었다. 논리적으로 차분히 반박해도 돌아오는 것은 억지와 어색한 분위기뿐. 이기려고 하면 할수록 그 몸부림은 결국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루하고도 피곤한 감정소모전만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품고 있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아이.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며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다. 나 역시 그 아이에게 지배받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아이가 느꼈던 두려움과 억압은 어른이 된 나의 분노로 표출되고, 관계 속에서 상처를 키운다.


나는 이제 그 상처받은 아이를 직면해야 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억압받았던 경험이 지금의 분노를 만들었음을 인정하고, 그 아이를 위로해야 한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 아이에게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노력해야 한다.


결국,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로 인해 만들어진 마음속의 상처다. 논리와 이성으로 승부를 보려던 어리석음을 이제 내려놓으려고 한다.


모든 인간의 갈등과 논쟁은 내 마음속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의 울음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논리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려고 감정으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이번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물론 이걸 알았다고 아버지를 당장 이해하고 포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지루한 갈등의 뿌리를 들여다보았고

그 시작점에 내 안의 아이에 손 내밀어 준다면

아버지와의 소통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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