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밝혀진 진실
처형이 내 아이를 피했던 시간은 정확히 2년이었다.
명절날 조리원에서 온 영상통화.
장모님이 화면 너머로 신생아를 보여주시려 할 때,
처형은 슬금슬금 자리를 뜨곤 했다.
화장실을 간다며 슬쩍 자리를 피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대충 눈치챘다.
하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아니,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원해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넘겼다.
아내는 더 조심했다.
처형과 아이를 동반한 만남을 피했고,
아이 사진도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부모님만 있는 별도 방을 만들어
그곳에서만 성장 일기를 공유했다.
언니를 배려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우리도 불편했던 것이다.
축복받지 못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기분.
그래서 더 미안했다. 우리가 먼저 가진 것에 대해.
장모님은 가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물으셨다.
언니는 요즘 어떠냐고. 아내는 대답을 피했다.
"아직 몰라~" 같은 모호한 대답으로.
모두가 궁금하긴 했지만 가족 모임에서도 그 주제만큼은 금기였다.
마치 볼드모트처럼, 처형의 임신 진행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내가 처형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동생이 먼저 아이를 갖고,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
축하해야 하는데 축하할 수 없고,
예뻐해야 하는데 예뻐할 수 없는 복잡함이.
그런 처형이 어제 임밍아웃을 했다.
임신 8주째라고.
가족들이 모인 식당에서였다.
처형은 아직은 조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임신했다는 그 한 마디에 식탁이 조용해졌다.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드디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처형이 덧붙였다.
꽤 오랜시간 동안 자연임신을 시도하다
올해부터 난임 클리닉을 다녔고, 시험관 시술을 받았는데
두 번 만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동안 처형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얼마나 많이 절망했을지를.
이상했다. 축하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팠다.
아이를 2년 동안 피해야 했던 처형의 마음이, 이제야 보였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여 복잡했다.
식사가 끝나고 아기를 안아주는 처형.
그제서야 처형의 얼굴에서 그동안의 경계심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가족이란 이런 것 아닐까?
서로의 아픔을 모른 척하면서도,
결국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큰 배려가 되고,
때로는 그 침묵이 상처가 되기도 하는.
우리 아들은 이제 사촌동생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인정하고, 기다릴 줄 아는
조금 더 성숙한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