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훈육까지 곁들여야하는 재접근기가 온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야, 제일 귀여울 때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나도 안다. 정말 귀엽다.
하지만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18개월을 맞았다.
매일 보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부쩍 컸다는 게 느껴진다.
특정 사람과 사물을 알아보고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아니, 표현은 아직 서툴다.
요즘 아들의 새로운 취미는 물건 가리키다.
사물을 반복적으로 가리키며,
그게 무엇인지 대답을 들으려 한다.
자기 귀를 가리키며 "귀!" 해주면,
그 다음 코를 가리키며 "코"를 기대한다.
선풍기, 신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여러 번이고 다시 가리킨다.
가리키면서 "에!" 한다.
말은 못 하지만,
내가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듣고 학습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나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해 준다.
작은 선생님과 학생이 된 기분이다.
그중에서도 "아빠"라는 단어만큼은 정확하다.
"아빠! 아빠!"
아마 아들이 가장 정확하게,
처음으로 발음한 단어가 아빠일 것이다.
울 때 "음마아... 음마..." 이렇게 운 적은 있지만
"아빠!"처럼 명확하고 클리어하게 발음한 적은 없었다.
아빠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아들은 인사성이 밝다.
길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든,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택배 아저씨든 상관없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시선을 맞춘 후
손을 흔들어준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으면서
같이 손을 흔들어 주신다.
"어머, 안녕!" "우리 아기 참 예쁘네!" 하시면서.
이건 낯을 많이 가리고
애살있게 살가운 짓을 못하는
아빠와는 영 반대인 것 같다.
아들에게서 내가 갖지 못한 사회성을 본다.
가끔은 내가 아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요즘 조금 난감한 점이 있다.
주관이 뚜렷해지다 보니 뭔가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목욕을 하려고 옷을 벗길 때도 벗기 싫다고
"아땨! 아따!" 한다.
아땨는 '하지마' 정도의 뜻인 것 같다.
내가 뭔가 먹고 있으면 그거 달라고 떼를 쓴다.
안 된다고 하면 또 "아땨!"
결국 조금 떼어 주면
한 입 맛보더니 안 먹고
먹는 걸로 장난치며 난장판을 만들어놓는다.
그리고는 또 "아땨! 아땨!"
그리고 자기가 놀고 있는데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봐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건 진짜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괴성을 지른다.
"꽤애애애액!"
깜짝 놀랄정도의 하이톤이다.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아이 앞에서 소리 지른 적도 없고,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꽥꽥!
보통 심통을 부릴 때는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덥거나 답답할 때다.
90% 이상이 이런 조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막상 얼굴이 시뻘개져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아들을 보면 약간 당황스럽다.
여태까지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놀아주고,
아프지 않게 케어해 주는 육아였다.
생존과 안전, 그리고 사랑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훈육도 필요한 시기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다.
단순히 돌봄을 넘어서, 작은 인격체와의
진짜 소통과 교육이 시작되는 것 같다.
시팔개월이라고 해야 할까,
십팔개월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됐든 18개월 아들은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당황스럽고 어려운 존재.
그래도 "아빠!"라고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